ChangJo BBS


작성자
정재상
날짜
11/06/0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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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논찬 : 유해룡 교수의 영성지도의 시대적 요청과 분별의 주체로서의 마음 (이강학)
 
 

논찬_유해룡 교수의 “영성지도의 시대적 요청과 분별의 주체로서의 마음”에 대하여



(* 이 글은 2011년 5월 28일, 한국실천신학회 영성분과에서 발표한 유해룡 교수의 논문에 대한 논찬 원고입니다.)




이강학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대학교)




먼저 유해룡 교수의 글을 간단하게 요약해본다. 논찬자가 볼 때 저자의 글은 다음의 세 가지 질문들에 대한 모색이다: 첫째, 우리 시대가 왜 영성지도를 필요로 하는가? 둘째, 영성지도는 무엇이며 영성지도와 분별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셋째, 우리 마음은 어떻게 분별 능력을 갖추게 되는가? 이 세 가지 질문들에 대해 유 교수는 어떻게 답변을 하는지 정리해보자.



첫째, 우리 시대가 영성지도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1) 우리 시대에 영성지도가 필요한 이유는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신비적 속성이 건강하게 통합되어야하는데 이 통합의 가능성을 알아차리고 실현하기 위한 영적 분별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2) 탈 권위적, 탈 중심적, 탈 형식적인 후기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은 많은 영적 혼란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들이 영적 혼란의 경험에서 영적 성장의 경험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회가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위의 질문과 관련해서 저자가 현재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신비적 요소와의 사이에 있는 조화와 통합의 결여에서 찾는 것은 무척 적절하고 정확한 혜안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영성지도는 무엇이며 영성지도와 분별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1) 영성지도는 인간이 영성적인 존재가 되도록, 즉 초월적 실재를 지향하는 내면적 삶의 추구를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2) 영성지도자는 영적 성장과 관련해서 관상과 활동의 조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다시 말해서 내면세계와 외부세계가 한 개인의 인격 안에서 통합되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3) 영성지도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영성지도자는 윤리적, 상황적, 그리고 신비적 분별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분별이란 “참된 영적생활과 거짓되고, 왜곡된 형태의 영적 삶을 구별해” 내는 것이며, “피지도자가 겪고 있는 다양한 경험들의 차이점들을 구별해” 내고, “적합한 선택과 결단에 이르도록 가치판단을” 내리는 능력과 관계된 것이다. 이 답변들을 통해 저자는 영성지도는 어떤 경로가 정해져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영성적 인간의 내면적 삶의 추구를 존중하는 것임을 적절하게 강조했다. 아울러 영적 성장에 있어서 관상과 활동의 조화가 가장 중요한 분별 기준임을 잘 보여주었다. 또한 영성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분별 능력이 윤리적, 상황적, 그리고 신비적 성격이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셋째, 그렇다면 우리 마음은 어떻게 분별 능력을 갖추게 되는가? 저자는 분별 능력을 갖추게 되는 과정을 두 단계로 설명 한다. 1) 첫 번째 단계는 도덕적 성찰을 통해 식별할 수 있게 되는 단계이다. 도덕적 규범에 기초한 도덕적 성찰은 마음을 정화시켜줌으로써 분별의 첫걸음인 식별을 가능하게 해준다. 여기에서 식별이란 “차이를 인식하는 일”이다. 2) 두 번째 단계는 신적조명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얻게 된 “그리스도의 마음”은 신적조명으로서 분별의 눈을 열어준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은 오직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다. 이 답변들을 통해 저자는 영성훈련과 영적 분별의 관계, 그리고 영적 분별 능력의 은혜성을 잘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서, 성찰이라는 영성훈련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효과가 있음을 주지시켜 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별 능력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라는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확인해 주었다. 또한, 영적 성장의 단계로 알려져 있던 정화와 조명이 어떻게 분별 능력을 얻는 과정과 관련되는지를 잘 규명해주었다.




다음으로, 유해룡 교수의 글은 영성지도 및 영적 분별과 관련해서 많은 중요한 통찰들과 함께 토론 주제들을 던져준다. 그 중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주제는 식별과 분별의 개념 구분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식별과 분별을 명료하게 구분한다. 즉, 식별은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인식하여 그 진위를 구별하고자 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분별은 앞서 식별한 것을 바탕으로 “가치 판단을 통하여 알맞은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 글에서 식별과 분별의 이 개념 구분은 무척 중요하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분별 능력을 갖추게 되는 두 단계가 곧 이 구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계가 도덕적 성찰에 의한 인식으로서의 식별이고 두 번째 단계가 신적조명에 기반 한 분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찬자는 저자의 이 개념 구분에 대한 설명을 더 듣기 원한다. 왜냐하면, 식별과 분별의 개념을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 한편으로 새롭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경우 기독교 영성 분야에서 지금까지 식별과 분별은 이러한 개념 구분 없이 같은 의미로 쓰여 온 것이 사실이다. 대체로, 가톨릭 자료에서는 식별이라는 낱말을 주로 사용했고, 개신교 전통에서는 분별이라는 낱말을 주로 사용해왔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각 낱말이 담고 있는 내용의 차이 라기보다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번역상의 차이로 여겨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식별과 분별의 개념을 구분하는 저자의 주장은 신선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이런 원론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굳이 그 개념들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가? 그 개념들을 구분하기 보다는 식별과 분별을 폭넓게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본 후에, 그 내용에 있어서 인식의 능력과 판단의 능력을 포함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낫지는 않을까?



식별과 분별의 개념 구분과 관련해서 나올 수 있는 또 하나의 질문은 저자는 왜 그 개념들의 차이를 성경에 나오는 원어 상의 차이점을 바탕으로 규명해 들어가기보다, 국어사전을 바탕으로 차이점을 규명하는 방법을 택했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누엘 루이스 후라도는 <영적 식별>에서 식별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신약 성경의 용어들로부터 시작한다. 즉, δοκιμ&#940;ζω와 διακρ&#943;νω이다. δοκιμ&#940;ζω는 “우리에게 제시되는 것의 유효성 여부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거부하거나, 그 정당한 값을 평가하거나 그에 합당하게 더 크거나 더 작게 고려하거나 할 수 있기 위해서, 시험과 조사를 거쳐 저울질하는 것”1)을 뜻한다. 그리고 διακρ&#943;νω는 “우리 앞에 있는 것을 정확하게 구별하고 평가하기 위해 하는 분리에 의한 판단”2)을 의미한다. 이 두 단어의 의미에 가장 근접한 라틴어는 dis-cernere이며, 그 영어 명사형은 discernment이다. 그리고, 그 의미를 종합하면 식별이란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의 진정한 본성이나 의향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구별하는 것, 섞여 있어 혼동의 우려가 있는 것을 결심하기 이전에 정확하게 생각하고 평가하기 위해 분리하는 것”3)이다. 이 정의에서 식별은 구별하고 평가하기 위해 분리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후라도의 이 개념 정의는 유 교수의 개념 정의와 혼선을 빚는다. 후라도가 말한 식별은 저자의 경우에 식별과 분별 모두를 종합한 것이거나, 아니면 분별에 더 해당하기 때문이다.



식별의 개념을 다루는 또 다른 예는 저자도 참고한 김승혜의 <유교의 시중과 그리스도교의 식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 김승혜는 후라도와는 달리 국어사전에 기반 해서 식별과 분별의 개념을 구분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식별과 분별의 개념은 저자에 의해 인용이 되었으므로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그런데, 김승혜는 유 교수처럼 식별을 분별 능력을 얻는 과정에서의 첫 단계로 이해하지 않고 두 용어가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분별이 차별한다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분별보다는 식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고 말하고 있다.4) 김승혜의 이런 관점을 고려할 때, 다시 저자의 식별과 분별의 개념 정의는 독특하며 새로운 동시에 또 한편으로 낯설다. 이에 대한 유 교수의 보충 설명을 듣고 싶다.



두 번째 토론 주제는 도덕적 식별과 영적 분별과의 관계이다. 식별은 윤리학에서도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논문에서 유 교수는 도덕적 식별을 영적 분별과의 관계 안에서 들여다본다. 다시 말해서, 윤리학과 기독교영성의 관계를 분별이라는 주제를 통해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학문이 오늘날처럼 세분화되기 전에는 윤리와 영성은 통합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저자의 설명에 잠시 언급되듯이 수덕적 신학(ascetical theology)과 신비적 신학(mystical theology)으로 구분되었고, 오늘날에는 기독교윤리학과 기독교영성처럼 아주 분리된 학문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저자의 시도는 분별 능력을 얻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 두 분야를 잘 통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 윤리학과 기독교 영성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하나의 단초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글에서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도덕적 식별은 기독교윤리학에서 말하는 식별의 의미를 다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의 역할과 관련해서 제한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도덕을 규범과 관련해서만 논하는 것은 윤리학의 주제를 너무 제한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윤리학은 도덕적 규범 뿐만 아니라 분별 또는 식별과 관련해서 도덕적 선택(moral choice)이라는 무척 중요한 주제를 다룬다. 이 주제는 영적 분별의 한 분야인 결정내리기(decision making 또는 election)와 긴밀하게 연결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저자가 설명한 분별 능력을 얻는 과정 안에서 도덕적 선택이라는 주제는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세 번째 토론 주제로, 유 교수의 글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은 분별에 있어서 조화와 통합의 중요성이다. 저자가 명시적으로 조화와 통합이 분별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라는 점을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분별의 기준으로서 조화와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글은 잘 보여주고 있다. 교회가 건강한지는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신비적 요소가 잘 조화를 이루고 통합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를 분별해보면 된다. 개인의 영성이 건강한지는 개인의 관상적 삶과 활동이 조화와 통합을 이루고 있는 지를 살펴보면 된다. 이 주제를 더욱 목회 현장에서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다음의 질문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즉, 구체적으로 영성지도의 현장에서 영성지도자는 조화와 통합이라는 분별 기준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또, 교회의 경우에 혹은 개인의 경우에, 조화와 통합이 깨어져있다는 것이 분별을 통해 확인된 후에는, 조화와 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어떻게 영성 지도를 해나가야 할까?



네 번째 토론 주제로 삼고 싶은 것은 분별에 있어서 이성과 정서의 역할이다. 이 주제를 떠올리는 이유는 논찬자의 오해일수도 있지만 유 교수가 다루는 분별에 대한 이해가 이성이라는 기능을 중심으로 설명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자가 “그리스도의 마음”에 대한 막시무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잠시 살펴보라: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 그리스도의 방식에 따라서 인간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기능에 대한 신적 조명이요 활성화라고 한다.” 또, 저자는 본론의 말미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떻게 분별의 눈을 열어주는지를 세 가지 측면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 첫째 역시 “인지 체계”가 현저하게 새로워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또는 일치가 가져오는 경험이 순수하게 지성적인 것인지, 아니면 정서적인 것인지, 아니면 지성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이 통합된 성격의 것인지에 대한 토론은 아주 오랜 기독교 영성의 주제이다. 예를 들어, 버나드 맥긴은 그의 책 <서양 신비주의의 역사> 시리즈에서 지식과 사랑 (Knowledge and Love)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지식과 사랑은 신비적 경험이 순수하게 지성적 경험인지 아니면 정서적 경험인지를 표현하는 낱말들이다. 또, 이냐시오 영성에서 이냐시오 성인의 “영적 이해 (spiritual understanding)”라는 신비적 경험이 순수하게 지성적 경험인지 아니면 정서적 경험을 동반한 것인지에 대한 토론도 분별과 관련해서 거론된 적이 있다. 이반 하워드 (Evan Howard)는 그의 책 Affirming the Touch of God: A Psychological and Philosophical Exploration of Christian Discernment (하나님의 손길을 확인하기: 기독교 분별의 심리학적, 철학적 고찰)5)에서 분별을 "affectively-rich act of knowing"(정서가 가득한 앎의 행위)라고 정의를 내림으로써, 분별 능력이 정서와 뗄 수 없는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영적 분별에 있어서 중요한 역사적 자료를 남긴 로욜라의 이냐시오와 조나단 에드워즈도 정서의 중요성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냐시오가 영적 분별에서 중요한 분별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영적 위로(spiritual consolation)와 영적 실망(spiritual desolation)에 대해 거론한 것과, 조나단 에드워즈가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기준으로서의 <신앙적 정서>(Religious Affections)를 강조한 것을 생각해보라. 분별 능력의 정수인 “그리스도의 마음”은 순수하게 지성적인 경험인가 아니면 정서와 통합된 경험인가? 분별 능력에 있어서 지성과 정서에 대한 이런 토론이 혹시 저자의 논문과 관계가 된다면, 저자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견을 듣고 싶다.




논찬을 마무리 하면서, 이 논문을 통해 한국교회에 영성지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시고, 영적 분별이라는 주제를 다각도에서 더욱 심도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유해룡 교수께 감사드린다. 본 논찬의 목적은 유 교수의 논문에 대한 평가라기 보다는 이 논문에 담겨 있는 다양한 영성의 주제들을 펼쳐 보임으로써 토론을 활성화하는 것임을 주지하며 논찬을 가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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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누엘 루이스 후라도, <영적 식별>, 박일 역 (서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0), 33.

2) 같은 책.

3) 같은 책, 34.

4) 김승혜, <유교의 시중과 그리스도교의 식별> (서울: 바오로딸, 2005), 12.

5) Evan Howard, Affirming the Touch of God: A Psychological and Philosophical Exploration of Christian Discernment (NY: University Press of America, 2000),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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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ID : jaesang
2011-06-09 11:05:52

출저 : 스피리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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