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Jo BBS


작성자
정재상
날짜
12/09/29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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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9
제 목
 누가복음에 나타난 기도의 영성 (유은호목사)
 
 


누가복음에 나타난 기도의 영성



유은호
(창문교회 담임목사/ 실천신학/ 영성신학)


■ 초록■


이 논문의 목적은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기도유형을 분석하는데 있다. 신약성경의 사복음서 중에 누가복음은 기도를 가장 강조한다.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 예수께서 기도에 대해 가르치신 것과 예수의 기도와 기도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서 기도는 누가복음 전체의 핵심사건으로 자리한다. 누가복음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은 이 핵심사건의 절정을 이룬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은 누가공동체가 선호한 예수의 기도영성을 대표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공동체는 예수의 다양한 영성 중에 특별히 기도영성을 강조한다. 사복음서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들을 비교하면 이러한 입장이 보다 더 설득력을 얻는다. 마태복음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은 말씀을 강조한다. 마가복음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은 이적을 강조한다. 요한복음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은 목양을 강조한다. 이에 비해 누가복음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은 기도를 강조한다. 이러한 복음서간의 차이점은 각 복음서 공동체가 자기들이 선호하는 예수의 영성을 각각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 나타난 기도의 영성은 예수의 영성일 뿐만 아니라 누가공동체가 선호한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누가복음이 특별히 예수의 기도영성을 강조한다는 입장을 증명하려고 한다. 이러한 입장을 증명하기 위해 첫째로 신약성경 안에서 누가가 가장 많은 기도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제시할 것이다. 둘째로 누가복음 안에서 기도의 위치를 설명할 것이다. 셋째는 누가복음의 기도 구절을 중심으로 다른 복음서와 비교하여 누가복음이 다른 복음서보다 기도를 더 많이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밝힐 것이다. 또한 누가복음에는 예수의 다양한 기도유형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밝힐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누가복음에는 개인기도, 철야기도, 산기도, 관상기도, 항상 기도, 중보기도, 통성기도, 성령을 구하는 기도 등 다양한 형태의 기도가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기도는 누가공동체 구성원들의 다양한 기도욕구를 해소시키기 위한 누가의 목회적 돌봄과 영성적 인도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기도의 유형은 기독교 영성사 속에서 여러 기독교 신앙 전통을 통하여 자신들이 선호하는 기도영성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도들은 어떤 것이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등하며, 각 신앙 전통의 삶의 자리 속에서 자신들이 선호하는 예수의 기도유형을 계승하고 강조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기도유형을 분석하는 것은 목회적으로, 영성적으로 기독교 신앙 전통간의 기도를 통한 갈등의 요소를 해소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주제어
기도, 영성, 유형, 누가공동체, 다양성, 신앙 전통
I. 들어가는 말


기독교 영성사 속에서 기도라는 주제는 영성의 어떤 주제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기도 주제는 기독교 영성사 속에서 여러 신앙 전통들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각자 계승시켜 왔다. 그러나 각 신앙 전통이 계승한 기도의 유형이 성경의 기도를 바르게 계승했는지를 성경을 통하여 확인해야 한다. 영성학자 조던 오먼은 “모든 것을 성경에 비추어 이해하고 평가해야 한다. 어떠한 영성이라도 성경과 밀접하면 할수록 더욱 더 확실한 것이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로 통합하는 요소이며, 궁극적 표준임을 뜻하고, 모든 다양성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조던 오먼이 말한 대로 모든 것을 성경에 비추어 평가할때 다양한 신앙 전통들이 계승한 기도유형이 성경을 통해 수정 보완될 것이며,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에 의해 독점하는 것을 막고 성경이 말하는 다양한 기도유형의 가능성을 열어두어 기도유형으로 인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기독교 기도영성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의 기도유형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신약의 사복음서 중에 예수의 기도유형을 가장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는 복음서는 누가복음이다. 누가복음 안에 나타난 기도의 영성을 연구하는 것은 예수의 기도영성의 유형을 밝히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기도가 누가공동체의 영성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밝히는데 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기도는 누가공동체가 선호한 영성의 특징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복음서와의 비교를 통하여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각 복음서들의 차이점을 비교 연구하는 목적은 각각의 복음서의 독특한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이다. 그런 차원에서 사복음서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을 비교하는 것은 각 공동체가 선호한 영성을 추적하는데 첫 번째 실마리를 제공한다. 각 복음서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이 다른 것은 각 공동체가 각자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들이 선호한 예수의 영성을 계승한 영성적 자기정체성의 신앙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복음서에 나오는 한 두 구절로서는 예수의 영성이라고 정의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적어도 하나의 신앙적인 영성유형이 형성되려면 각 복음서 전반에 걸쳐 일관성 있게 그 영성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지가 구절들을 통해 증명되어야 한다. 각 복음서의 영성을 찾기 위한 성서 신학적인 연구는 연구의 기준이 공평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각 복음서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을 각 복음서의 영성을 찾는 기준점으로 삼는 것은 정당하다. 각 복음서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과 그 자체 복음서 안에서 가장 강조하는 영성의 내용이 일치하면 그 복음서가 강조하는 예수의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 복음서의 영성을 다루는 것은 본 논문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 논문에서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영성을 연구하는 것으로 범위를 한정하도록 하겠다.
누가가 누가복음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24장 49절의 기도 강조는 누가복음 전체에 핵심사건으로 자리한다. 복음서에 나타난 핵심(kernels)이라고 불리는 사건들은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으로서 그것들이 삭제되지 않아야 서사이야기의 논리가 파괴되지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기도는 누가복음 이야기의 핵심사건으로 자리 잡는다. 누가복음서에는 사건의 결정적인 단계들이 예수의 기도를 통해 도입되고, 기도라는 맥락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의 비교 속에서도 기도를 특별히 강조한다. 다른 복음서와의 기도구절 비교는 더 현격하게 누가공동체가 기도영성을 선호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러한 증거들은 누가공동체가 특히 예수의 기도영성을 선호한 공동체였음을 증명해 주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이 논문은 누가공동체가 예수의 기도영성을 선호한 공동체였음을 밝히기 위해 II장에서는 신약성서와 사복음서에 나타난 기도의 구조를 다루고, III장에서는 누가복음에서의 기도의 위치를 다룰 것이며, IV장에서는 사복음서간의 기도비교와 본문 주석을 통하여 결론적으로 누가공동체가 예수의 기도영성을 선호하여 계승한 공동체였음을 밝힐 것이다. 동시에 예수의 기도는 다양한 기도유형을 함축하고 있으며, 그 다양한 기도유형은 기독교 영성사 속에서 자신들의 신앙 전통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여 계승했다는 점도 간단하게 밝힐 것이다. 본 논문의 연구방법은 누가복음 안에 나타난 기도를 누가공동체가 공유한 영성이라는 영성 신학적 관점에서 분석할 것이며, 주로 자료비평 방법으로 누가복음에 나타난 기도구절을 다른 복음서와 비교하고, 주석함으로 누가공동체의 영성의 하나의 표현으로 기도를 다루도록 하겠다.

II. 신약성서와 사복음서에 나타난 기도의 구조

이 장에서는 신약성서 전체 속에 나타나는 기도의 종류가 어떤 것들이며, 특히 사 복음서 기자 중에 누가가 기도에 대한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강조하고 있음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 누가가 신약성서 전체 속에서 다른 성서의 기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도를 보다 더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도록 하겠다. 신약성서에는 기도에 대한 용어가 전체적으로 14개 나타난다. 누가는 신약에 기도를 가리키는 전체 14개 용어 중에 87회 사용으로 가장 많이 기도를 사용하고 있다. 직접적인 기도의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된 경우는 ‘프로슈케’(προσευχή/proseuche, 기도)와 ‘데에시스’(δέησις/deesis, 간구)이다. 기도를 의미하는 명사형 ‘프로슈케’(προσευχή)는 신약에 총 37회 나온다. 복음서에는 마태 3회, 마가 2회, 누가 3회, 요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동사형 ‘프로슈오마이’(προσεύομαι)는 신약에 총 86(7)회로 가장 많이 나타난다. 이 중에 누가가 19회, 마태가 16회, 마가가 11회, 요한은 없다. 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와의 비교에서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 전체 속에서도 기도가 제일 많이 나타난다. 두 번째 간구의 의미를 가진 명사형 ‘데에시스’(δέησις)는 신약성서 전체에 19회 나타난다. 복음서에는 누가복음에만 3회 나타난다. 동사형 ‘데오마이’(δέομαι, 기도하다)는 신약성서 전체에서 22회 나타난다. 그 중에 누가복음에 8회 나타난다. 사복음서 중에서는 유일하게 마태복음에만 1회 나타난다. 위의 이 네 용어가 사복음서 안에서 사용되는 경우를 보더라도 누가복음은 33회로 기도에 대한 용어를 제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데니스 함(Dennis Hamm)은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유대인들의 타미드(Tamid) 제사에서 하는 기도를 소개한다고 말한다. 특히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기도하는 모습도 타미드(Tamid) 제사의 기도의 형식에 따라 기술한다고 보았다. 누가는 유대인들의 타미드(Tamid) 제사에서의 기도도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기도를 강조하는 누가와 누가공동체의 기도영성을 반영하는 증거이다.
해리스(Harris), 브린(O' Brien), 한규삼(Han Kyu sam, 사멜리(Samlley)등은 누가복음이 다른 복음서보다 예수께서 기도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가복음에도 기도에 대한 언급은 많으나(막1:35; 6:41,46; 7:34; 8:6-7; 14:22-23, 32-39; 15:34) 마가의 관심은 예수의 교훈이나 설교보다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 마태의 경우도 기도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이나 Q자료나 마가에서 온 자료이외에 자신의 특수 자료에서 기도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요한복음에도 기도가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요한복음 17장에 예수의 대제사장 기도가 대표적인 기도이다. 반면에 누가는 특히 공관복음서 기자들 가운데 기도에 관한 말씀과 이야기를 가장 많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 친히 기도했다고 한다(3:21; 5:16; 6:12; 9:18, 28-29; 10:21; 11:1; 22:32.41-45; 23:34.46). 한규삼(Han Kyu Sam)은 예수께서 교훈적인 관심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다섯 번의 기도를 가르쳤다고 보았다(10:2, 21-24; 11:1-4; 11:5-13; 18:1-8; 21:36). 이처럼 누가는 신약성서 안에서 뿐만아니라 사복음서안에서도 현저하게 기도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공동체가 예수의 영성 가운데 기도의 영성을 가장 선호한 영성으로 받아드렸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구체적으로 누가복음에서의 기도의 위치와 기능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III. 누가복음에서의 기도의 위치

이 장에서는 누가복음 전체 속에서의 누가의 기도의 위치와 기능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누가복음에서 사건의 결정적인 단계들은 예수의 기도의 맥락 속에서 일어난다(3:21; 6:12; 9:18, 28-29; 11:1; 22:41).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그의 공생애를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기도함으로서 시작했고(3:21-22),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기도함으로서 끝을 맺고 있다(23:34). 누가는 예수의 예루살렘으로의 여행기사의 앞부분인 누가복음 11장1-13절에서도 기도에 관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누가는 기도를 주제로 한 여러 교훈들을 나름대로 수집하여 두 묶음으로 결합해서 두 곳에 나누어서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여행기사의 앞부분(11:1-14)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행 기사의 뒷부분(18:1-14)에서 소개하고 있다. 누가는 예수의 예루살렘 여행의 시작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각각 기도에 관한 교훈을 소개함으로서 기도를 강조하고 있다. 누가공동체는 예수의 예루살렘을 향한 전도여행에서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는 모습을 통하여 누가공동체의 선교사역도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치는 것을 강조하려는 목적을 드러냈다.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도 더 많이 기도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해, 누가복음은 9회, 마가복음 5회, 마태복음 3회, 요한복음 2회 나타난다. 또한 누가의 예수는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기도에 대한 세 개의 비유를 소개한다(11:5-8; 18:1-8, 9-14). 누가의 예수는 자주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격려 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18:1; 21:36; 22:40). 누가는 예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 무리를 떠나는 분으로 설명하고 있으며(5:16),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6:12), 기도의 행동을 “그의 습관”으로 묘사하기도 한다(22:39). 또한 예수가 세례를 받으실 때(3:21)와 변모하실 때(9:28) 기도하시는 분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누가의 예수는 열 두 제자를 선택하시기 전에(6:12),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이끌어 내기 전에(9:18), 십자가 위에서(23:34, 46) 기도하신다. 이 모든 언급은 누가복음에만 있는 고유한 것들이다. 또한 누가는 예수께서 직접 기도하신 장면을 중심으로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다. 3장에 세례 받으신 후 기도(3:21), 4장에 광야에서의 금식기도(4:1-2), 5장에 문둥병자를 고치신후 기도(5:16), 6장에 제자를 부르실 때 기도(6:12), 9장에 기도하시고 베드로의 신앙 고백 받음(9:18), 10장에 예수의 감사기도(10:21), 11장에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기 전에 기도하심(11:1), 22장에 베드로를 위한 중보기도( 22:32), 겟세마네에서의 기도(22:39-41), 23장에 십자가위에서 기도(23:34)하신 것 같이 누가는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기도보다는 예수의 기도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누가는 누가복음 3장, 4장, 5장, 6장, 9장, 10장, 11장, 22장, 23장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를 중심으로 복음서를 쓰고 있다. 이것은 누가와 누가공동체가 예수의 기도의 영성을 자신들이 선호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사복음서와 누가복음에 나타난 기도 단락들을 비교하여 누가복음에 나타난 기도의 특징들을 보다 더 선명하게 조명해 보고 그 결과로 예수의 다양한 기도유형이 나타나고, 그 기도유형은 기독교 영성사 속에서 계승되었음을 보이도록 하겠다.

IV. 사복음서의 기도구절 비교와 다양한 기도유형의 계승
이 장에서는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기도에 대한 중요 단락들을 사복음서와의 비교 속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기도 본문이 들어있는 내용에 대한 세밀한 주석이 아니라 누가복음에 있는 구절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누가복음의 기도부분과 비교할 수 있는 다른 복음서 구절은 크게 17개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중에 특히 누가가 언급한 기도부분을 중심으로 본문을 주석하면 누가공동체가 예수의 다양한 기도영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한 기도영성은 기독교 영성사의 영성가들을 통하여 계승되었다.

1. 세례를 받으시다(마 3:13-17; 막 1:9-11; 눅 3:21-22; 요 1:29-34)

마태복음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마가복음 1: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 오심을 보시더니”
누가복음 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προσε υχομενου) 하늘이 열리며”
요한복음 1: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 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해리스(Harris)는 이 장면이 누가복음에 많은 예수의 기도 중에 첫 번째 언급이라고 했다. 누가만이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렸다고 기록한다. 누가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은 신 후 기도하시는 동안에 일어난 것에 대해 관심한다. 누가는 마가의 “물에서 올라오실새”를 기도하시는 예수에게로 초점을 바꾸어 놓는다. 누가의 경우 기도는 성령 받는 수단이 된다(행4:31; 8:15-17 참조). 한규삼도 누가의 예수의 세례 기사는 성령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 누가공동체는 세례를 받을 때 기도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누가는 세례기사를 통해 기도와 성령을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다. 누가공동체는 처음(3:21-22)과 마지막(24:49)에 기도와 성령을 연관시키므로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는 것을 처음부터 세례 기사에서 강조하고 있다. 성령과 기도를 연관시키는 누가공동체의 기도영성의 특징을 보여준다.

2. 나병 들린 사람을 깨끗하게 하시다(마 8:1-4; 막1:40-45; 눅 5:12-16)

마태복음 8: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 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누가복음 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προσευχομενος)”

마가복음에는 예수가 나병환자를 고치신후에 군중을 피하여 단순히 떠난 것으로 암시하지만 누가복음에는 예수의 목적이 기도하시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는 적극적인 면이 보인다. 누가는 누가복음 4장 42절에서 생략한 기도 모티프를 이 시점에서 다시 소개하고 있다. 누가공동체는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는 개인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공동체였을 것이다. 기독교 영성사 속에서 동방정교회의 수도사들은 기도의 준비단계로 마음의 고요한 상태를 위해 필로칼리아에 나오는 무정념(apatheia)의 상태를 추구했다. 동방의 수도사들은 마음의 기도를 위해 잡념을 극복하고 무정념의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 사막으로 나가 기도했다. 이러한 수도사들의 모습은 예수께서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신 모델을 계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방의 수도사 중에 한적한 곳에 가서 개인기도를 한 대표적인 사람은 수도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토니이다. 그는 애굽의 한적한 사막으로 들어가 20년간 개인기도 생활을 했다. 영성학자 앤드류 라우스(Andrew Louth)는 아타나시우스가 반오리게네스적인 동시에 반신비주의자로 관상을 통하여 거룩하게 된다는 신비주의를 의심했기 때문에 『성 안토니의 생애』에서 관상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런 차원에서 안토니의 기도는 관상기도와 구별되는 예수의 개인기도의 전승을 계승하였다.

3. 열두 제자를 사도로 택하시다(마 10:1-4; 막 3:13-19; 눅 6:12-16)

마태복음 10:2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마가복음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누가복음 6:12-13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προσεύξασθαι)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
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προσευχή)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누가복음의 예수만이 제자를 선택하기 위해 기도하시러 산에 가시고,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고 제자를 선택하신다. 특히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것은 기도의 엄숙함을 강조한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예수께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긴 시간 동안 기도하시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누가공동체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생각하고 지도자를 새울 때는 밤을 지새우며 철야기도를 통해 지도자를 세웠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교회의 영적 지도자를 선택할 때 개인 신상의 자료를 참고할 뿐만 아니라 특히 밤을 새우며 기도하는 예수의 철야기도의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4. 원수를 사랑하라(마 5:43-48; 눅 6:27-28, 32-36)

마태복음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 여 기도하라(προσεύχεσθε)”
누가복음 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 하라(προσεύχεσθε)”

마태 5:44c와 누가 6:28b는 예수어록 Q 6:27-28로부터 왔다. 누가는 기도를 강조할 목적으로 예수어록 Q 6:27-28에 나오는 ‘[[그리고]] 너를 [[비방]]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다. 여기의 기도하라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요구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누가는 누가복음서를 믿음을 부인하도록 박해하는 상황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쓰고 있다. 그러므로 누가공동체는 예수의 기도를 따라 모욕하는 자, 박해하는 원수까지 기도해주는 것을 최고의 사랑을 실천하는 기도로 보았을 것이다.

5. 베드로의 고백(마 16:13-20; 막 8:27-30; 눅 9:18-21; 요 6:67-71)

마태복음 16: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 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복음 8: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 새 길에서 제자들 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누가복음 9: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προσευχόμενον)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요한복음 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누가복음만이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누가는 예수께서 누가복음 11장 1절에서 제자들 중에서 기도를 하셨던 것처럼 여기서 하는 기도도 확실히 앞으로 오게 될 중대한 계시 이전에 있을 신적인 인도를 구하는 것이다. 물론 누가의 ‘기도하실 때에(προσευχόμενον)’가 D, a, c, e, syc 사본에는 빠져 있다. 그러나 비록 누가복음의 일등급 대문자 사본인 D 사본에 빠져 있지만 보다 더 권위가 있는 누가복음의 일등급 파피루스 사본인 P3사본에 이 단어가 있기 때문에 그 권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고대역본이나 시리아역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본문에는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누가공동체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식하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 기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을 것이다.

6.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시다(마 17:1-9; 막 9:2-10; 눅 9:28-36)

마태복음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 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마가복음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누가복음 9:28-29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προσεύξασθαι)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προ
σεύχεσθαι)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누가는 마가의 전승을 따르지만 마가와는 달리 예수께서 산에 오르신 목적이 기도하시기 위해서이며,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었다고 기록한다. 누가는 예수께서 산에 오르신 것을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과 연관시키고 있다(출 24장:33-34). 여기서 마태와 마가는 예수께서 산에 오르신 목적이 기도와 연관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누가만이 다른 복음서에 없는 “기도하시러”를 첨가한다. 여기서 기도는 신적인 계시를 받기 위한 적절한 태도이다. 예수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임재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결과 제자들은 신적 영역 안에서 변모된 예수를 볼 수 있었다. 누가는 “기도”가 예수의 모습이 변화하게 된 주요 요인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즉 예수의 얼굴이 변화되어 광채가 나게 된 것은 다른 복음서에서와 같이 예수께서 높은 산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께서 “기도하셨기” 때문이었다. 누가공동체는 이 본문에 나타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임재를 경험하고, 기도를 통한 변모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와 연관된 변모의 사건은 훗날 동방과 서방교회가 선호하는 관상기도의 결정적인 모델로 작용한다. 기독교 영성사 속에서 관상기도의 대표적인 모델을 계승한 사람은 서방교회의 개혁 깔멜 수녀회의 아빌라의 데레사의 관상기도의 방법을 들 수 있다. 데레사는 변화산에서 기도를 통해 변모하신 예수를 모델로 삼는 대표적인 관상기도를 계승하였다.
7. 예수의 감사기도(마 11:25; 눅 10:21)

마태복음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누가복음 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 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태복음 11장 25절과 누가복음 10장 21절은 Q 10:26으로부터 왔다. 누가는 Q를 충실히 따르면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기도하셨다고 언급한다. 여기서도 누가는 성령과 기도를 긴밀히 연결시킨다. 마태는 Q의 기도부분을 인용하기는 하지만 누가보다는 단어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누가공동체는 구성원들에게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을 이상적인 기도의 모델로 제시했을 것이다.

8. 기도를 가르치시다(마 6:9-13; 눅 11:1-4)

마태복음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προσεύχησθε)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누가복음 11:1-2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προσευχόμενον) 마치시매 제자 중에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προσεύχεσθαι)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는 기도할 때에(προσεύχησθε)”

마태복음 6장 9절과 누가복음 11장 1-2절은 Q 11:1-2a, 2b로부터 왔다. 누가는 Q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누가의 특수자료 부분인 11:1a인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실 때 제자 중에 하나가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 기록한다. 마태가 기도를 한 번 언급한 것에 비해 누가는 세 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는 마태와는 달리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기 전에 기도를 하신 것을 강조한다. 마태의 주기도문이 산상수훈(6:5-15)의 맥락에서 주어졌다면, 누가의 주기도문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11:1-13) 교훈적인 맥락에서 주어진다. 마태의 주기도문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누가의 주기도문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기도문이다. 누가는 요한의 그룹을 포함한 다른 유대인 그룹들이 그들 자신들을 구분하는 기도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예수를 중심으로 한 자신들의 공동체의 특징을 나타내 줄 기도문을 원했다. 마태의 주기도문이 순수한 기도 또는 은밀한 기도를 위한 모델로 제시되었다면, 누가의 주기도문은 자신의 공동체를 다른 공동체와 구별 짓기 위한 독자적인 기도문을 갖기 위해 반복 없는 간결한 형태로 주기도문을 수용했다. 누가공동체는 세례요한이나 유대인 공동체가 가지고 있었던 기도문을 능가하는 간결한 형태의 기도문으로 여러 번 반복하는 구송기도를 선호한 공동체였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공예배안에 주기도문과 교독문이 사라지고 있는 예배의 현실에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구송형식의 주기도문을 예배의 현장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회중 전체가 참여하는 기도로 예배가 더 은혜스럽게 드려질 것이다.

9. 친구의 간청을 들어주는 비유(눅 11:5-8)

누가복음 11:8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ἀναίδ
ειαν)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사멜리(Samlley)는 누가와 사도행전의 저자의 최대의 관심은 특별히 간청하는 기도에 있다고 했다. 누가는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치시는 문맥에서 친구를 위해 간청하며 기도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누가는 마치 우리의 친구들처럼 그들이 불편할지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우리의 청을 들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고 보았다. 브린(O'Brien)과 힌슨(Hinson)은 이 비유는 끈질긴 기도에 대해 가르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존슨(Johnson)은 8절의 아나이데이아(anideia)가 처음에는 교회에서 ‘수치를 모름’(shamelessness)으로 번역되다가 점차적으로 ‘끈질긴'(persistence)로 번역되었다고 보았다. 당시의 고대 근동의 문화속에서 친구를 위해 도움을 간청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석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아나이데이아(anideia)는 ’수치를 모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후파드(Huffard)도 누가가 이 비유를 앞의 주의 기도(11:1-4)와 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부분(11:9-13)의 중간에 샌드위치 시키면서 강청함(ἀναίδειαν)을 ‘끈질긴’으로 번역하여 내용적으로는 누가복음 18장 1-8절의 끈질긴 과부의 기도와 연관시킬 수도 있지만, 그 당시의 상황과 문화적 배경으로 볼 때 인간의 끈질긴 노력을 통해서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 아니라 주인의 명예, 즉 하나님의 명예 때문에 응답하신 것으로 본다. 이처럼 존슨과 후파드는 모두 공통적으로 아나이데이아를 인간의 끈질긴 것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본다. 한편 스노드그래스(Snodgrass) 역시 아나이데이아를 인내 혹은 끈기와 상관없는 것으로 보지만 ‘수치를 모름’을 부정적으로 만 보지 않고 누가복음 11장 11절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담하게 요구하는 것같이 아나이데이아에 대담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끈질긴 기도에 초점이 있기 보다는 수치를 모르는 담대한 기도를 가르치는 교훈을 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누가복음의 첫 번째 특수 자료인 누가복음 11장 5-8절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중보기도의 성격을 가진다. 누가는 중보기도는 인간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와 고결함 때문에 응답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누가공동체는 친구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지만 결국 기도에 대한 응답은 인간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말하고 있다. 다만 담대함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자세는 포기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 영성사속에서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해 예수의 중보기도의 모델을 계승한 대표적인 사람은 루터교 계열의 개신교 영성가 조지 뮬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생을 통해 고아들을 위해 중보기도로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은 사람이다. 그의 기도는 응답을 확신하고 수치를 모를 정도의 담대한 기도를 일생 드려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한국교회의 현장에서 개인적인 성화와 축복을 위한 기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타인의 필요를 위한 중보기도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안에 개인기도와 중보기도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때 성도들이 건강한 기도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0. 구하면 주신다(마 7:7-11; 눅 11:9-13)

마태복음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ἀγαθά)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πνευμα ἅγιον)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마태복음 7장 11절과 누가복음 11장 13절은 Q 11:13절로부터 왔다. 마태는 Q의 ‘좋은 것‘을 그대로 가져오지만 누가는 Q의 ’좋은 것‘을 ’성령‘으로 해석한다. 노스(North)는 신약의 여러 곳에서 ’성령‘(Spirit)과 '선'(Good)과 ’덕’(Goodness)이 서로 밀접하게 가깝게 나타나는데 누가복음 11장 13절이 가장 가깝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단어들은 동일한 셈족어에 속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누가는 기도와 성령을 의도적으로 연결하여 강조하고 있다. 누가의 다양한 사본들은 마태 본문(ἀγαθά-아가다,”좋은 것 [것들]“)과의 일종의 혼합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령’을 지지하는 외적 증거가 보다 더 우수하다. 누가는 오순절 이후 초대 교회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성령이기 때문에, 누가는 하나님이 부모로서 단지 일상적으로 필요한 것들만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인 성령을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기를 원했다. 사멜리에 의하면, 누가는 실제적으로 인간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최초의 응답으로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누가공동체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인 성령을 받으려고 기도하는 공동체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복음의 예수의 마지막 명령은 이런 입장을 더 확실하게 지지해 준다. 기독교 영성사 속에서 성령을 받는 기도를 가장 잘 계승시킨 사람은 개신교 오순절 교파에 속하는 아주사 거리에서 성령운동을 일으킨 윌리엄 시무어이다. 그는 아주사 거리의 한 건물에서 3년 동안 매일 성령을 받기위한 기도를 통해 성령을 충만히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로 떠나는 일도 일어났다. 현재 한국교회는 너무 지성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예배와 기도회의 현장에서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함으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한국교회는 다시 한 번 제2의 부흥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11.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눅 18:1-8)

누가복음 18:1-8 “항상 기도하고((πάντοτε προσεύχεσθαι)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 로 말씀하여(1절)...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βοώντων) 택하 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7 절)”

누가복음 18장 1-8절은 누가의 특수 자료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 비유에서 2-5절만을 본래의 본문으로 돌릴 수 있다고 보지만 프리드(Freed)는 1절에 누가가 잘 사용하는 기도(프로슈코마이, προσεύχομαι)를 사용하고 있는 점을 볼 때 1절의 기도에 대한 언급도 본래의 본문으로 돌릴 수 있다고 보았다. 비록 거기에는 예외가 있지만(SB II, 237f.; I. 1036) 일반적으로 유대교의 가르침은 영속적인 기도(perpetual prayer)의 사상을 반대했다. 힉스(Hicks)도 유대인들에게 끊임없는 기도는 하나님에게 비난받기 쉬운, 성가신 기도로 인식되었으며, 보통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단 6:10). 그러므로 힉스는 여기에서 예수께서 항상(πάντοτε) 기도하라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기도 태도와는 대조되는 것으로 인내하는 기도를 격려하는 비유로 보았다. 하워드 마샬(Howard Marshall)도 여기서 항상 기도는 끊임없는(continuous) 기도보다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계속적으로 끈기 있게 기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힌슨(Hinson)도 이 비유는 누가와 사도행전에 나오는 누가의 주 관심인 인내하는 기도의 대표적인 비유로 보았다. 이처럼 이 비유는 응답을 받기 전에는 포기하지 말라는 끈기 있는 기도를 제시하고 있다. 레이드(Reid)는 여기에 힘없는 과부는 인내를 통하여 의로운 승리를 쟁취해 냈다고 보았다. 누가는 누가공동체가 기도를 할 때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절규하듯이 항상 간절하게 끈기 있게 인내하면서 기도한 것처럼 기도하도록 영적지도를 하고 있다고 보인다.
누가는 누가복음 18장 7절에서 기도의 방법에 해당하는 ‘부르짖는’(βοώντων)것에 대해서도 마가(15:34)와 마태(27:46)는 예수께서 이 단어를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누가는 십자가에서 부르짖는 예수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23:44). 반면에 누가는 이 ‘부르짖는다’는 단어를 누가복음 18장 7절의 기도의 맥락에서 사용한다. 누가복음 18장 7절은 확실히 방해받는 자신들의 현실과 싸우는 누가공동체의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누가공동체는 자신들의 개인적이며, 공동체적인 기도를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르짖는 끈질긴 통성기도를 권장했을 것이다. 누가는 부르짖는 끈질긴 통성기도를 예수기도의 중요한 유형 중에 하나로 부각시키고 있다. 한국교회의 기도하면 ‘통성기도’라는 기도의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한국교회의 통성기도는 유명하다. 한국교회에 첫 통성기도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모체가 되었던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기독교 영성사속에서 개신교 장로교에 속하는 길선주 목사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현장에서 나타난 통성기도의 전통을 계승한 대표적인 영성가이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났던 통성기도는 개인적인 기도일 뿐만 아니라 민족의 아픔을 승화하는 공동체적인 통성기도였다. 이런 점에서 한국 초대교회의 통성기도는 누가공동체의 밤낮 부르짖는 기도와 맥을 같이 한다. 한국교회는 다시금 한국 초대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던 개인적이며, 공동체적인 끈질긴 통성기도를 회복함으로 현재 한국교회안에 개인적 기도로만 흘러가는 통성기도에서 민족을 살리기위한 공동체적인 통성기도를 강조함으로 균형을 이루어 한국사회와 민족으로부터 인정받는 기독교로 다시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12.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눅 18:9-14)

누가복음 18:9-14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 리라(10절)…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11절)...세리는 하나님이여 불 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3절)”

홀마스(Holmas)는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성전을 전략적으로 기도의 장소로 두고 있다고 보았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당시 남성 유대인들이 성전 남자 구역에서 두 손을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한 데 반해서,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로 눈을 들 생각도 못하고 제 가슴을 치며”기도한다. 여기서 바리새인의 기도는 그들의 교만과 다른 사람들을 멸시했기 때문에 자격을 박탈당한다. 누가공동체는 유대교의 성전기도의 전통을 인정하면서도 외식하는 바리새인같이 교만한 기도가 아니라 세리와 같은 겸손한 기도를 자신들의 이상적인 기도의 모델로 제시했을 것이다.

13.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34-38)

누가복음 21:34-36, 38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 도록 항상 기도하며(παντί δεόμενοι)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36 절)”

누가복음 21장 34-38절은 누가의 특수 자료이다. 36절에 나오는 ‘기도하며’(데오메노이, δεόμενοι)는 누가가 기도를 위해 사용하는 특유한 용어이다. 이 용어는 깨어서 머물러 있으라는 의미이며,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깨어 있는 중요한 행위이다. 여기서 누가는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항상’을 앞에 붙인다. ‘항상 기도하며’ 는 누가가 강조하는 기도의 특색이다. 누가공동체는 심판을 준비하는 깨어있음의 표지로 항상 기도를 제시하고 있다.

14.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이르시다(마26:30-35; 막14:26-31; 눅 22:31-34; 요13:36-38)

누가복음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έδεή θην)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해리스는 이 구절을 예수께서 베드로를 위해서 행한 중보기도(intercession)로 보고 있다. 누가복음 22장 32절에서 누가는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예고한 본문에서 누가만이 예수의 기도부분을 첨가한다. 베드로의 믿음에 대한 예수의 기도의 내용은 사탄의 공격에 의해서 쇠진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기도이다. 여기서 예수가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베드로도 동시에 기도할 의무가 있다. 누가공동체는 서로간의 믿음을 위한 중보기도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가의 특수자료 중에 중보기도가 두 번 나온다. 이것은 누가가 예수의 기도영성 중에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15. 감람 산에서 기도하시다(마 26:36-46; 막14:32-42; 눅 22:39-46; 요18:1)

마태복음 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προσεύξωμαι)너희는 여기 앉 아 있으라 하시고”
마가복음 14: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가 기도할 동안에(προσεύξωμαι)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누가복음 22:39-44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προ σεύχεθε)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 하여(προσηύχετο)”(39-41절)...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 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44절)”

블레이싱(Blaising)은 예수의 게세마네에서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이며,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동의하는 기도였다고 본다. 누가는 마가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누가에게만 있는 특수 자료를 통해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신다. 반면에 마가와 마태는 예수께서 아무런 언급 없이 기도하시는 것으로 기록한다. 또한 누가는 예수께서 감람산에 습관을 따라 가셨음을 언급하면서 자주 기도하시러 감람산에 가셨음을 암시한다. 기도 언급에 있어서도 마태(26:36)와 마가(14:32)는 기도를 한번 언급하는데 비해 누가는 두 번 언급한다(22:39-41). 누가의 예수만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하라고 말로 강조하신 후에 실제로 기도하신다. 누가의 예수는 다가올 위기 속에서 제자들이 큰 시험을 면하기 위해 기도하도록 격려한다. 유대인들의 일상적인 기도 자세는 ‘서서 하는 기도’였다(눅 18:11,13). 그러나 누가의 예수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신다(22:41). 이 구절은 누가의 것인데 보기 드문 이런 기도의 자세는(서서하는 기도자세의 예는 SB II, 259-262) 예수의 겸손함과 절박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에허만(Ehrman)과플룬케트(Plunkett)는 누가복음 22장 43-44절이 여러 고대 사본에 나오지 않는 외부적인 문제와 필사의 가능성 때문에 누가의 본문으로 돌릴 수 없다는 이론과 그러나 신학적으로나 교차대구법적인 구조적인 면을 볼 때는 본래 누가의 것으로 돌릴 수 있다는 두 가지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고 보았다. 그린(Green)도 누가복음 22장 43-44절은 누가가 창작할 가능성과 전승으로부터 올 가능성을 모두 양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른 복음서에 없는 땀이 핏방울같이 될 정도의 애써 간절히 기도하는 표현을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누가의 원래의 본문에 없다가 후대의 누가공동체의 구성원이 삽입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누가공동체가 공유한 기도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증거가 된다. 전체적으로 누가는 누가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힘쓰고 애쓰는 기도를 해야 하는 기도자세를 가르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6.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마 27:33-37; 막 15:22-26; 눅 23:33-34, 46; 요 19:17b-27)

누가복음 23:34, 46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 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 을 쌔”(34절)...예수께서 큰 소리를 불러 이르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 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46절)

키스테마커(Kistemaker)는 예수의 십자상의 일곱 말씀 중에 누가복음 23장 34절의 기도를 제일 먼저 한 것으로 순서를 배열하고 있다. 그는 누가가 선교적인 동기를 가지고 십자가 주위의 네 명의 로마 군인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했다고 본다. 누가의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가장 먼저 기도로 말씀을 시작할 정도로 기도를 강조하시는 예수를 그리고 있다. 이 군인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는 시나이,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있으나 파피루스 75, 바티칸 베자 사본에는 없다. 그러나 일등급 대문자 사본인 시나이나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있는 것을 보면 그 권위를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 있다. 누가의 예수는 기도를 통하여 이타적인 존재로 변화된다. 기도를 통하여 변화된 인간은 본래의 자기중심성을 초월한다. 브린은 공관복음서 중에 오직 누가만이 예수께서 운명하실 때에 큰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셨다고 말한다. 이처럼 누가와 누가공동체는 예수같이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기도해 주는 자기중심성을 초월한 기도를 이상적인 기도중의 하나로 삼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마지막 기도인 큰 소리로 하는 절규의 통성기도는 누가공동체가 핍박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절박한 기도의 유형 중에 하나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17. 누가복음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눅 24:44-49)

누가복음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4장 49절은 누가의 마지막에 나오는 특수 자료이다. 누가의 마지막 특수 자료는 성령과 기도가 연관되어 있다. 누가의 예수의 마지막 말씀은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성에 ‘머물라’고 하신다. 여기에 ‘약속’은 사도행전 1장 4절과 연관되어 있으며, 예루살렘에 머물라는 논리는 사도행전 2장 33절 안에서 명백하게 설명되어 진다. 다시 말해 약속을 위해 예루살렘성에 머물러 성령의 부어주심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누가의 예수는 성령을 받기 위해 머무는 방법으로 사도행전 1장 14절의 기도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사도행전을 누가복음의 두 번째 책이라고 전제할 때 여기의 저자적 독자가 성에 머물라는 말을 사도행전 1장 14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기도에 전혀 힘썼다는 구절을 전제로 회상을 한다면 누가복음 24장 49절의 ‘머물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가공동체는 성령을 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한곳에 모여 기도를 한 성령을 받는 공동체였을 것이다.

V. 나가는 말

누가공동체는 예수의 다양한 영성 중에 기도영성을 선호한 공동체로 보인다. 누가복음의 저자적 독자가 대체로 주후 1 세기 말, 로마 제국 동부지역, 팔레스타인 밖에 산 것으로 추정해 본다면 누가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있었던 혼합 공동체일 가능성이 높다. 누가는 다양한 누가공동체의 구성원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다양한 예수의 기도모델을 제시했을 것이다. 특히 영성적으로 본다면 누가는 기도에 대한 특수자료를 통해 예수의 예루살렘 여행초기의 친구의 청을 들어주는 비유(11:5-8)와 후기의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는 재판관의 비유(눅 18:1-8)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18:9-14)를 인클루지오(inclusio) 기법을 사용하여 누가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하나님께 기도를 하되 세리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기도하라는 영적지도의 차원에서 본문을 배치했다고 보인다. 누가공동체의 기도의 유형으로는 개인기도(5:12-16; 9:18), 철야기도(6:12), 산기도(22:42-44), 관상기도(9:28-29), 항상 기도(21:36), 중보기도(22:32), 통성기도( 18:1-8), 성령을 구하는 기도(11:9-13; 24:49)등 다양한 형태로 기도가 나타난다. 이 다양한 예수의 기도의 유형은 어떤 기도가 다른 기도보다 우위에 있다는 서열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유형의 기도는 평등한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기도도 다른 기도보다 우위에 있다는 성서적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다양한 기도의 형태는 누가공동체에 속한 다양한 구성원들의 기도에 대한 갈망을 해소시키기 위한 누가의 목회적 돌봄과 영성적 지도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영성사속에서 주로 동방과 서방교회는 관상기도를 최고의 우위에 두는 기도론을 강조해 왔다. 반면에 개신교는 주로 개인기도나 통성기도 혹은 중보기도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적어도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기도유형을 분석해 보면 관상기도나 개인기도의 우위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기도가 동등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위성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누가공동체가 선호한 기도의 관점에서 보면 누가복음의 중간(11:9-13)과 마지막(24:49)에 나타난 성령을 구하는 기도가 누가공동체가 가장 선호한 기도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 영성사 속에서 신앙 전통들은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민족과 인종과 지역과 문화에 따라 강조한 기도의 유형도 모두 달랐다. 포스트모던이즘 시대의 한국교회의 목회 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기도 갈망을 가진 성도들이 함께 섞여 있는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구성원들의 다양한 기도 갈망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한두 가지 기도유형만이 아니라 누가복음에 제시되어 있는 예수의 다양한 기도유형을 적절하게 제시함으로 성도들이 다양한 기도생활을 통해 영적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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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s■


Spirituality of prayer in the Gospel of Luke

Eunho You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prayer of Jesus in the Gospel of Luke. Luke highlights the prayer more than any other Gospels in the New Testament. The Gospel of Luke has more to say about prayer, the prayer of Jesus, and Jesus taught about prayer than any of the other Gospels. Therefore, I suggest that Luke placed prayer indispensable core in the Gospel. We can see that Jesus' last word is the climax in Luke. So, I insist that the last saying of Jesus represents prayer spirituality that Lukan Community. Most of all, Luke‘ community emphasizes specifically the prayer in the spirituality of Jesus. You will agree this through the comparison of Jesus' last word in Luke with those in any other Gospels. In Matthew, Jesus emphasizes the Word finally. Mark highlights the Miracle in the last words of Jesus. In John, the Ministry. But, Luke highlights prayer in Jesus' last words. This difference in the Gospels results in the different focuses about Jesus spirituality in each Gospel community. Therefore, we can say that Prayer centered Jesus spirituality in Luke is not only Jesus' own, but also Luke community.
I will show the correlation between the Focusing spirituality in the Gospel and Community spirituality, in Luke, especially about the prayer. Firstly, I will show that Luke used the term prayer and something like more than the other writers in the New Testament. Secondly, I will explain the importance of prayer in the Gospel of Luke. Thirdly, I will compare Luke with the other Gospels with priority given to prayer. So we'll see that Luke underlined prayer more than the other Gospels. Furthermore, Luke showed various prayer types of Jesus. To put it concretely, personal prayer, midnight prayer, mountain prayer, contemplative prayer, endless prayer, intercession prayer, Tongsung prayer, a prayer asking the Holy Spirit. Maybe various forms of prayer like these might reflect Luke' of the pastoral care and spiritual guidance to relieve desires of prayer for the wide range of Luke' community members. Jesus prayers like these in Luke were inherited and developed in history of christian spirituality in preferred type by several community. However some prayers didn't take the precedence over others but were rather equal. On the place of life, people succeeded to the prayer, and emphasized some prayer. For this reason, it is pastorally beneficial to solve conflicts of prayer in the different christian tradition that we analyze the prayer of Jesus in the Gospel of Luke.

Key Words

Prayer, Spirituality, type, Luke community, Diversity, Faith trad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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