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Jo BBS

작성자
박관희
날짜
11/03/03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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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9
제 목
 에크하르트에 관한 자료를 부탁드립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의 영성

중세 11세기 초에 시작하여 13세기 그 절정을 이루었던 ‘스콜라 신학’은 중세를 대표하는 신학이었습니다. 14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신비주의가 등장하였습니다. 중세의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스콜라신학의 영성은 지성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이었습니다. 스콜라 신학의 첫째 목적은 교의(敎義)와 이성(理性)을 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둘째는 교회의 교리를 체계 있게 정리하여 소위 가장 완전한 신학이 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들이 교의와 이성을 조정하려고 한 것은 이성을 신앙의 뒷받침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교회의 교리를 정리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모든 지식을 세상으로 하여금 분명한 진리의 체계 속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스콜라 신학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대중화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진리에 대한 이성을 통한 냉철하고 명확한 규정으로 튼튼한 진리의 토대를 만듦으로써, 평신도들에게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스콜라 신학의 최고의 절정기를 이룬 이가 에크하르트의 선배인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이었습니다.


14-15세기는 특히 신비주의 운동이 발달했던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 잉글랜드, 이탈리아 등지에서, 후세 사람들에게 위대한 영감을 투사하는 신비주의가들의 저작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역시 신비주의가 가장 크게 그 기세를 떨친 곳은 라인강 유역 독일 및 저지대 지방이었습니다.


중세 독일 신비주의의 중요 주제는 '영혼 안에서 탄생하는 하나님'입니다. 이 주제는 도미니코회 사제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와 그 제자들인 요한 타울러(Johannes Tauler)와 헨리 수소(Heinrich Suso) 등에 의해 전개된 신비 사상을 통해 심오하게 발전되었습니다.


독일 신비주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은 마이스터(Meister)로 알려진 에크하르트 폰 호크하임(Eckhart von Hochheim)이었습니다. 일반인들만이 아니라 기독교인들도 어거스틴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을지라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에 대하여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14세기 신비주의 시작은 독일의 도미니코 수도회원인 에크하르트를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독일 신비주의의 창설자이며 선구자로서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의 신비, 그리고 초탈과 관상적 삶에 대한 심오한 사상을 발전시킨 사람이었습니다. 어거스틴 못지않게 어떤 점에서 보면 현대인들의 깊은 영적 갈증을 해소시키고 허무의 질병을 치료해줄 사상가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그는 중세기의 위대한 사상가이며, 신비가이며, 탁월한 수도원 행정가이며, 신학과 철학을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14세기 신비주의를 연 에크하르트는 1260년경 독일의 에르푸르트의 호크하임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15-17세 쯤 에르푸르트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였습니다. 도미니코 수도회는 지원기로 그곳의 삶의 방식을 실천적으로 배우는 기간이 1년, 수련기에 들어가 수도회의 전례와 수도 회칙을 공부하는데 2년, 그리고 신학과 철학을 연구하는데 8년이 걸렸습니다. 5년은 철학, 3년은 신학에 할애됐습니다.


그는 신학은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 강의를 듣는데 1년이 걸렸습니다. 피터 롬바르드(1100-1164)의 <명제집>을 연구하고, 그것에 대한 강의를 듣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롬바르드의 <명제집>은 신학의 여러 주제들을 네 권의 책-하나님, 피조물, 성육신과 구원, 덕, 성사, 그리고 종말에 관한 일들-으로 모은 것이었습니다. 롬바르드의 <명제집>은 주로 어거스틴에게서 뽑은 인용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라틴계통의 다른 신학자에게서 뽑은 인용문들도 약간 포함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 책은 수세기 동안 신학 교수들이 자신들의 강의 출발점으로 사용한 성경 이외의 주요한 텍스트였습니다. 이러한 연구 기간이 끝난 다음 뛰어난 재능을 지닌 도미니코 회원은 전문적으로 신학을 연구하기 위해, 여러 개의 스투디움 제네랄레 중 하나에 보내졌습니다.


‘스투디움 제네랄레’란 그런 목적을 위해 도미니코 수도회가 세운 연구소였습니다. 에크하르트가 콜로뉴에 있는 스투디움 제네랄레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연구소는 중세에 가장 뛰어난 활약과 다방면에 지적 탐구의 정신을 가졌던 사람 중의 하나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1193-1280)가 1248년에 세운 것이었습니다. 1252년에 이르기까지 콜로뉴에서 알베르투스의 가장 뛰어난 문하생은 토마스 아퀴나스였습니다.


에크하르트는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교육을 받고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사상적 세례를 받으며 자신의 신비주의 사상을 전개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는 인간의 정서적 본성을 희생시키고 이성만을 강조하는 스콜라 사상의 한계를 극복하여 새롭게 신비주의 사상을 전개한 정신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이성의 빛을 추구하는 스콜라 사상에, 어두움과 그늘진 곳에 감추어져 있는 신비주의의 정서를 탁월하게 접맥시킨 사람이었습니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분명한 개념적 사고와 황홀한 종교적 감정은 결코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1293-1294년 에크하르트는 롬바르드의 <명제집> 강사로 당시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파리 대학에 있었습니다. 이쯤에 에크하르트는 신학자로서 가장 높은 박사 학위인 마이스터(Meister)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는 파리에서 짧은 기간 동안 머물렀습니다. 1294-1298년 사이에는 에르푸르트 도미니코 수도회의 원장이었으며, 동시에 투린지아 도미니코 수도회의 대리주교이기도 했습니다. 수도원의 장상으로서 그의 임무가 행정적, 재정적 수완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돌봐야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들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에 깊이 공감하는 것이었습니다.


에크하르트의 가장 어려운 일은 공동체와 나이 어린 수련생들의 안녕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그리고 어떤 정신으로 이 의무를 완성했을까. 이 기간에 쓰여진 <분별에 관한 교훈>(교훈담화)이라고 하는 글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리주교로서 그는 투린지아의 여러 수도회를 찾아 여행하는 것과 수도회 관구장의 대표자로 활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관구장은 독일이 두 개의 주로 분할되기 바로 이전 시기에 에크하르트에게 그러한 도움을 요청했음에 틀림없습니다. 에크하르트가 이러한 여러 지역의 일들을 동시에 맡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규모 있는 삶과 경건의 능력이었습니다.


1298년에 열린 총회에서 수도원장과 대리주교를 겸임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서로 다른 일들이 모순된 요청을 부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1300년까지 에르푸르트의 수도원 원장으로 있었습니다. 1302-1303년에는 파리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학문 분야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대우였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그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라고 말할 때, 그들은 이 학문적인 성취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학기가 끝날 무렵 새로운 행정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본래 독일의 도미니코 수도회가 속해있던 투토니아는 북부 독일이 점차 독립된 행정단위가 되어감에 따라 분리되어야 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새로운 주, 곧 47개의 도미니코 남자 수도회와 많은 수녀원을 포함하고 있었던 삭소니의 첫 번째 관구장(1302-1311)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는 수도회 공동체의 여러 가지 대외적인 선교활동과 대내적인 원활한 기능을 위해 사람들의 재능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각 수도회의 경제적 안정뿐만 아니라, 영혼과 종교적인 훈련을 보전하거나 함양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새 관구장은 위와 같은 매일의 일상사만을 돌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그의 재임 기간 말기까지 3개의 도미니코 공동체의 창립을 만족스럽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에크하르트는 징계가 필요할 때조차 이상주의를 고무시키고 영적인 진보를 꾀하면서, 수도원 공동체들을 치리하였습니다. 어려운 일 가운데서도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기 때문에 그는 깊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1307년 아직 관구장으로 있을 동안 에크하르트는 보헤미아 도미니코 수도회를 개혁하는 일을 위임받았습니다. 전체 도미니코 수도회의 대리주교로서 그 일을 해나갔습니다. 에크하르트가 이런 많은 일들을 감당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도 동반되었습니다. 독일인으로서 언어가 잘 소통되지 않는 보헤미아에서 수도회를 개혁하는 데는 그들의 비협조와 반감과 부딪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관구장은 자신이 치리하고 있는 모든 수도회를 정기적으로 방문해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는 교통의 미발달로 도보로 흩어져 있는 수십 개의 수도원을 방문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이 시기에 에크하르트의 작품은 두 개의 라틴어 설교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주어진 일들을 잘 수행해 나갔습니다. 이에 1310년 투토니아 지방의 선제후는 그를 그곳의 관구장으로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1311년 수도회의 나폴리 총회에서 관구장 임명 동의안을 부결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를 파리 대학의 신학교수로 다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그동안의 그의 무거운 짐들을 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파리 대학(1311-1313)에 두 번씩 지목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에크하르트가 그의 선임자 토마스 아퀴나스와 나란히 가질 수 있었던 영예로 볼 수 있습니다. 이후에 행적은 확실치 않지만, 콜로뉴의 스투디움 제네랄레에서 선발된 도미니코 수도회원들과 수녀들의 영적지도를 맡았을 것이었습니다. 특히 에크하르트는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많은 설교를 하였습니다. 전해오는 많은 설교들이 대중을 향한 설교였습니다. 그의 설교는 많은 청중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이일은 교회 당국자들의 못마땅한 시선을 끌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와 예술가는 당대엔 언제나 몰이해 당하고 심지어 박해를 받는 것이 상례이듯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적 영성사상은 당대 교권주의자들에게 비난과 이단사냥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의 신비사상이 지닌 철저한 급진성 때문에 파리대학 신학부 교수였고, 교구장으로서도 큰 인물이었던 도미니크 수도회의 거성인 그 자신도 생존 말기엔 교황청당국의 이단재판의 피고인이 되었습니다.


도미니칸 수도회에 대해서 비우호적이던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 하인리히 폰 피르네부르크가 그 지역의 대주교였으며, 이제 막 큰 인기를 누리게 된 에크하르트는 대주교궁에서 처음 이단으로 정식 고소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고소장에 나열된 오류 목록에 대해서 라틴어로 〈변호 Defense〉를 써서 답변한 뒤 자기를 아비뇽 교황궁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교황궁에서 그의 저서들에서 추려낸 새 이론 체계를 증명해보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단은 아니다. 실수란 정신과 관련이 있는 것이고 이단은 의지와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처럼 신비를 체험해본 일이 없는 재판관들 앞에서 그는 확신을 가지고 "내가 가르친 것은 순수한 진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1329년 3월 27일 교황 요한네스 22세의 칙서는 두 목록에서 추려낸 28개의 이론들을 단죄했습니다. 이 칙서에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이미 죽은 것으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 1327년 혹은 1328년쯤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죽기 전에 고소당한 오류들을 철회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1327년) 전, 2-3년은 신앙과 도덕의 문제에서 일탈하여 이단으로 비난 받은 무지한 사람들을 지도했다는 비난에 맞서, 교회법정에서 그 자신을 변론해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 그는 외롭고 참 고독했습니다. 1326년 쾰른의 프란치스꼬회 대주교 비텐베르크의 헨리는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을 조사하기 위해 두 종교 재판관을 임명했습니다. 그들은 그의 저서와 설교에서 의심스럽게 생각되는 108개 명제의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강력하게 자신을 변론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주장 중 어떤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단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정통신학에 위배되는 교리를 가르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1327년 도미니코회의 교회에서 잘못 퍼져나가는 모든 교리를 공식적으로 철회했습니다. 같은 해에 그는 어떤 결정이든 따르겠다는 자기의 의도를 미리 말하면서 교황청에 탄원했습니다. 그리고 쾰른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상을 떠난다. 1329년 3월 에크하르트의 가르침 중 28개 명제를 단죄됐습니다. 첫 15개와 마지막 2개는 그릇되고 이단적인 것으로, 또 다른 것들은 경솔된 것으로 단죄되었습니다.




에크하르트가 언제 죽었으며, 어디에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한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아비뇽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죽었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격동의 37년 간 큰 노력을 요하는 임무들을 해결하면서 교회를 섬겨왔건만, 교회가 자신을 단죄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그가 상심으로 죽었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기에 에프 펠스터가 복원한 재판 사본들은 다른 시나리오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 사본들은 자신이 받고 있는 재판의 정치적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고소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세 번이나 단죄하고, 바로 3년 전에 아퀴나스를 시성(諡聖)한 장본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에크하르트는 자신이 겪고 있는 시련을 자신과 같은 도미니크회의 형제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그것에 견주기도 하였습니다.


에크하르트는 분노하였고, 그가 받는 시련의 핵심을 사람들의 질투심을 그 재판의 핵심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질투심에 사로잡힌 자들이 나에게 덮어씌우려고 하는 오류들을 비난하고 혐오한다." 또한 그는 자신을 고소한 자들의 무지를 고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류로 간주하고, 모든 오류를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오류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것은 이단과 이단자를 만들어 낼 따름이다."


그는 자신을 파멸시키려고 마음먹은 비열한 자들에 의해 끌어내려진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에크하르트를 아비뇽으로 불러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를 전혀 신임하지 않았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자신의 작품 어딘가에 들어 있었을 스물 여덟 개의 논제로 인해 사후에 단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단죄는 그의 기쁨, 그의 에너지, 그의 자유를 앗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콤마를 찍을 때마다 조심스럽게 찍어 시간을 낭비하는 성향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신뢰하였고, 자기가 보았던 것을 그들도 볼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보았던 것은 생명과 기쁨이라는 확실한 열매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그것만이 중요했습니다.


에크하르트가 말하는 버림의 신학은 거의 심리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단죄를 버리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설교 24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가 단죄 받는 것을 정하셨다면, 그것은 우리의 본질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때에도 우리는 우리가 받는 단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우리가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듯이, 하느님께서 그것을 떠맡으시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에크하르트가 부당하게 단죄되었다는 데에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하였습니다. 에크하르트를 고소했던 자들이 그의 라틴어 저작을 읽어보기만 했어도, 그리고 영성의 역사를 에크하르트의 절반만이라도 알았더라면, 그들은 서양이 그 때까지 배출한 영성 신학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신학자를 정치가 단죄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었습니다. 이 단죄로 말미암아 손해를 본 자는 에크하르트가 아니었습니다. 손해를 본 자는 기독교의 교회였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지금까지도 에크하르트가 지녔던 것만큼의 통전적이고 영적인 비전을 찾아 헤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크하르트의 철학은 그리스·신플라톤주의·아랍·스콜라 등의 요소를 혼합한 것이기는 하나 독특 했습니다. 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철학은 반드시 단순하고 개인적인 신비체험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는 이 체험들에 여러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추상 용어들을 만들어냄으로써 독일어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1930년대에 일어난 독일 사회주의 운동은 몰염치하게도 그의 사상을 크게 변조함으로써 그를 자기들의 지적인 선구자들 가운데 하나로 삼았습니다. 오늘날 일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과 선(禪)불교 신자들이 에크하르트에게 큰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적 교의는 신 플라톤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띄고 있으며, 그의 목적은 거룩하고 형언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하나님에의 명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독특한 독설적 표현들이 때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교회의 신학이나 인간적 개념으로서는 하나님의 신성을 체휼할 수 없음을 설파하면서 하나님을 더욱더 높이려 하였고, 하나님은 인간적이고 신학적인 연구나 합리적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신성(神性) 속에서 무아(無我)의 경지로 소멸되는 신비적 명상을 통해 알게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나아가 그의 신 플라톤주의적 신비주의는 클레보의 버나드나 앗씨시의 프란치스코가 가르치던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신비주의와 커다란 차이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이들 두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적 인간인 동시에 성육하신 하나님으로 명상하면서, 거기서 유래하는 영감을 설파하였습니다. 반면 에크하르트는 성경적 사건들의 역사성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하길 '인간은 내면적 명상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아무런 중재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의 가르침은 그만큼 교회에 위험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에크하르트가 즐겨 다룬 문제는 성령의 현실적이고 살아있는 활동하심과 이 세상에서 인생의 성화(聖化)였습니다. 그는 활동적 생활과 정관적(靜觀的) 생활 사이에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활동이라는 것은 심령의 작용에 속한 것이요, 정관이라는 것은 심령의 본질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성직자들의 의식적 경건이나 성자(聖者)인 척 외모를 꾸미는 것을 천하게 보았습니다.


그의 사상은 종교개혁자들의 선구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부르짖기를 '죽은 성자의 유골이 무슨 역할을 해낸단 말입니까? ‘죽은 자는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중세 기독교와 근세 기독교의 분수령에 선 듯 느껴지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주장한 기본적 진리는 하나님의 내재(內在)에 있고, 그 내재는 인간 심령의 능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령의 소지(素地)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인간 성품이 신화(神化)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아무런 매개자도 끼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마저도 그에겐 정관(靜觀) 대상으로서의 성육하신 하나님으로서만 가치가 있는 듯 하였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신관의 특색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각각 아주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에크하르트는 우주 안에, 창조와 역사 안에 활동하시는 ‘하나님’(God)과 하나님 자산의 본래의 모습인 ‘신성’(Godhead)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존재, 또는 진·선·미의 근원으로서 창조의 하나님이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활동하시고, 창조와 인간의 구속 역사에 참여하시는 계시의 하나님 또는 내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에 의하면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창조성, 계시성, 내재성 등의 황동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한편 ‘신성’ 즉 하나님성은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인간의 어떠한 이름이나 개념이나 상징이나 언어로도 표현 불가능한 하나님의 자기 고유의 본질적 실재성을 말합니다.


무한자와 유한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은 종교적 신비주의 경험의 유형을 구분할 때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일단 거시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조명하여 본다면, 힌두교와 불교와 같은 동양종교의 신비체험에 있어서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는 상호 대칭적이며 상호 수렴됩니다. 하지만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유대교와 같은 서양 종교의 신비체험에 있어서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는 상호 비대칭적이며 수렴점을 설정하지 않습니다. 즉 다시 말해서 서양 종교에 있어서 인간은 결코 신이 아니며, 신 또한 인간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무한자와 유한자,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초월성의 개념은 고대 교부 시대부터 줄기차게 흐르고 있는 개념입니다. 이 사상은 본래 출애굽기에 나타난 “야훼” 하나님, 즉 하나님의 자기 자신성(I am that I am)과 자존성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6세기 초의 디오니수스 아레오파지트의 ‘하나님 너머의 하나님’의 사상, 즉 하나님은 모든 이름과 언어적 표현들과 본성까지를 초월하다는 사상을 거쳐 에크하르트의 하나님성(신성)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신성을 ‘행동이 없음’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성, 초월성, 침묵성, 심연성, 불가표현성, 불가지성, 또는 무성질성을 의미합니다. 그는 신성으로서의 하나님을 때로는 ‘무(無)’라고도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가 표현하는 무는 신의 불가지성과 불가표현성, 무한신비성, 그리고 존재의 근원성으로서의 무를 의미하는 것이며, 신의 비존재성을 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크하르트의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 및 심연성으로서의 신성의 개념은 결국 하나님 인식에 있어서의 부정의 방법(via negativa)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부정의 길, 즉 피조물이 지니고 있는 불완전성을 하나님으로부터 제거하는 길은 에크하르트의 신비신학의 특징입니다. 부정의 길은 디오니시우스를 통하여 전개되었습니다. 디오니시우스에 의하면 하나님은 완전히 초월적이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잘 찬미할 수 있는 길은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을 부정하거나 제거하는 일이며, 이 제거에 의해서만 어둠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부정의 길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언급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여, 점차 피조물이 지니는 여러 속성들과 상징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가서, 마침내 초본질적인 암흑에까지 이르게 하는 여정입니다.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하니님의 실재에 대한 진정한 의식은 활동적 하나님 너머의 신성의 인식에까지 이르러야 하는데, 이러한 신성의 의식은 인간의 사고나 추리나 상징들을 다 떨쳐버리고 오직 신성과 같은 초월적 능력을 지닌 우리 영혼의 순수화와 신적 조명과 영혼의 상승을 통한 신성에의 몰입과 합일의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바로 에크하르트의 신비 신학의 특색을 드러내는 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있음 곧 존재(Being)입니다. 그의 신학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하나님을 존재로 표현한 점입니다. 에크하르트는 출애굽기 3장 3절의 강해에서 모세에게 하신 하나님의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 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의 ‘존재’ 곧 ‘있음’ 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존재로서 만물의 신의 본질인 존재를 받아들임으로써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며, 하나님은 존재 곧 있음이 근거로서 모든 피조물 안에 내재할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그들 자신들보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에크하르트의 말을 빌리면, 존재로서의 하나님은 내가 나 자신에게 가까운 것보다 더 나에게 가까이 계십니다.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존재임과 동시에 또한 창조의 원리로서의 말씀(Logos)이기도 합니다. 즉 존재로서의 하나님은 말씀으로서, 만물은 이 말씀으로서의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 곧 창조자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행위이고, 아들로서의 하나님은 활동적 말씀이며, 성령으로서의 하나님은 말씀되게 하는 역할자이십니다. 에크하르트는 모든 피조물의 본성을 무(無)라고 보았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존재론은 피조물의 특성을 제거함으로서 궁극적인 신성으로의 귀환을 촉구합니다. 에크하르트는 다자는 참된 하나님으로서의 일치에 근거하고 이는 더욱 근원적인 신성으로서의 일치에 근거합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는 다자에서 신성으로까지 끊임없는 부저으이 과정을 통해 ‘돌파’하여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존재와 밀씀인 동시에 ‘앎’입니다. 하나니은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아는 ‘앎 자체이며, 그런 면에서 진리 자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전지‘(all knowing)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와 ’앎‘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습니다. 또한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으로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고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똑같은 사랑으로 인간의 영혼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십니다.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랑 자체로서 사랑밖에는 모르며, 또한 만물을 균등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삼중적입니다. 첫째 사랑은 창조의 사랑으로서 만물을 있게 하며, 또한 만물을 고루 사랑하는 평등의 사랑입니다. 둘째 사랑은 은혜의 또는 영적인 사랑인데 이 사랑은 우리 영혼에 자신을 주시며, 자신을 알게 하시며, 우리의 이성을 밝히시는 사랑으로서, 이 사랑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사랑은 신적인 사랑으로서, 자신의 아들인 그리스도를 탄생케 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은 사랑 자체로서 자신의 모든 은혜로 우리와 만물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사랑받아야 합니다.


매튜 확스는 에크하르트의 영성의 특징을 창조 영성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에크하르트의 영성 신학이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피조물인 우주 만물과의 신비한 관계성에 집중되어 있음을 듯합니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창조는 하나님의 축복 행위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선의 표현입니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피조물은 서로 상관관계에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자 하나님을 표현하는 언어이며, 수단이며, 흔적들입니다. 에크하르트는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축복하실 뿐만 아니라 만물을 사랑하시고 만물을 즐기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즐기시는 것과 똑같은 즐거움으로 만물을 즐기십니다. 여기서 에크하르트가 말하는 하나님의 즐기심은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행위를 의미합니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는 언제나 현재의 사건이며, 또한 영원한 현재적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이 태초는 영원한 현재(eternal now)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간은 연제나(영원히) 현재 뿐이므로, 과가, 현재, 미래의 구별은 인간이나 유한자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하나님께는 적용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지금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현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아들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만물을 창조 하십니다. 에크하르트가 여기서 말하는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하나님의 영원한 현재적 창조 개념은 에크하르트의 신학적 테마 중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인 동시에 에크하르트의 영성 신학(또는 신비신학)의 특성을 나타내는 점이며, 또한 이 개념은 근대 독일 관념론 철학과도 관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의 내면 속에 있는 ‘영성’ 또는 ‘영혼’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천사들과 달리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복합체이며, 인간의 영혼과 육체는 불가분리하게 통합된 하나의 통일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육체를 떠나서 영혼은 이성도 의지도 행위도 가질 수 없습니다. 에크하르트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두 개의 면(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한 면은 육체의 세계를 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 영인 하나님께 향한 것입니다. 이 영혼의 두 면은 영혼의 두 눈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외적 눈으로서 세계와 사물을 관찰하고, 후자는 내면의 눈으로서 하나님과 존재를 보는 눈을 말합니다. 외적 기능으로서의 영혼은 인간의 감각 작용과 육체의 활동 등에 관계되며, 내적 기능 곧 영혼의 깊은 차원인 영성으로서의 영혼은 인간의 사유 작용과 영적 직관의 기능을 합니다.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육체가 생명을 갖는 일은 영혼을 통해서입니다. 따라서 생명은 영혼의 능력과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혼은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나왔으며, 또한 생명은 신적 선물인 영혼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더 없이 소중하며, 그러기에 인간은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이 세상에서의 영혼은 육과 결합되어 있어서 육체의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맑게 정화되어야만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의 궁극적 목표는 근원자인 하나님께로 돌아감 즉 하나님과의 연합인데, 이 연합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 바로 인간의 내면 속에 있는 영혼의 근거라고 보았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영혼의 가장 지고한 영역인 영혼의 근거(영성)를 거룩한 보좌로서 죄에 대항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성취시키며, 거룩한 빛으로 밝혀진 도성으로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영혼을 그 밝음의 능력 때문에 불꽃이라고도 표현하고, 때로는 신적인 본질을 지닌, 그리고 신의 본질을 만날 때 일어나는 하나의 섬광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에크하르트는 하나님은 개념과 사유와 논리를 벗어납니다. 오히려 이름 부일 수 있는 모든 것이 폐기되는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유한자가 무한자를 인식할 수 있는 그 길은 오직 영혼의 불꽃에서만 열립니다. 에크하르트에 있어서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에크하르트는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이르는 길은 영혼에서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이 통로가 바로 영혼의 불꽃입니다.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은 영혼의 불꽃을 통하여 연결됩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교감할 수 잇는 이유는 인간이 영혼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끊임없는 정화를 통하여 유한자의 모든 결핍을 제거해야만 은총을 통하여 열리는 무한자의 빛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혹은 시간과 공간의 모든 표상은 피조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홍는 이런 유한한 인식을 돌파해야만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영성 신학의 최대 관심사는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하나님과 창조 세계를 올바르게 알며, 또한 하나님(신성)께로 상승하여 하나님과 합일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에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그 가능성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인 영혼과 지성을 소유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의 결합, 그리고 육체적 감각과 욕망 등에 의하여 혼탁해지고 어두워져서 하나님과 창조세계의 겉모습과 그 신비를 알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인간의 의지가 포기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하나님 특히 신성은 존재의 심연, 절대 침묵, 순수 영이므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하나님과의 합일을 위하여서는 우리 인간의 영혼도 자기 비움, 자기의 무화, 자기 부정 또는 자기 포기, 영혼의 순수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에크하르트가 피조물의 자기 비움을 통하여 창조주와 합일을 이루어낸다는 기독교 신비주의의 거대한 주조음을 충실히 반영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하지만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는 영혼의 불꽃을 통한 합일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는 궁극적으로 초극되는 국면이 존재합니다. 영혼의 자기 비움과 순수화가 및 최상의 방법을 에크하르트는 ‘초탈’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초탈의 개념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서 그의 영성 신학 사상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관건이 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초탈은 영적 가난, 무관심, 형상 없음, 자기 무화(無化), 버림 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초탈을 사랑보다도 더 우위에 놓습니다. 그 이유는 사랑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지만, 초탈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에크하르트는 초탈을 겸허보다 더 상위에 놓고자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초탈이 없는 겸허는 있을 수 있지만, 겸허가 없는 초탈은 불가능하며, 겸허는 인간을 피조물 앞에 자신을 낮추는 일에 관심을 갖게 하지만, 초탈은 오직 자신 속에 기이 머물러 있게 하며, 어떤 주의나 관심의 이동도 요구하지 않으며, 오직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께만 자신을 집중시키기 때문입니다.


에크하르트에게 초탈의 목표는 철저한 자기 무화(자기 비움)입니다. 철저한 자기 무화(無化)는 다름 아닌 자아의 순수화 곧 영혼의 맑아짐을 뜻합니다. 초탈은 자기 자신의 모든 사념, 사욕, 지식, 성취까지의 떨쳐버림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세상적인 것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온전히 초탈할 때 인간은 순수한 근원적 상태인 영혼의 근거로 돌아오게 되며, 이러한 무의 상태와 같은 영혼의 근거 위에 절대자 하나님 즉 신성의 모습이 비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히 초탈된 영혼의 상태가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로 돌아갈 갈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늘 나라를 소유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의 합일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에크하르트에게 의하면 완전한 초탈의 궁극적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동일 본질의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며, 구속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모범자이며 선취자이며 교훈자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거룩한 존재, 축복된 존재임을 깨우쳐주고, 알려주며, 그 길로 인도 해주기 위하여서 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곧 말씀이 인간이 되신 것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같은 거룩한 존재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에크하르트는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인 자기 아들을 이 역사에 탄생시키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고 그리스도와 같이 온전한 자기 부정과 자기 비움을 이룰 때, 울 영혼 속에 그리스도가 탄생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이 온전한 초탈을 이루어 영혼의 비움의 상태, 더없는 맑음과 무의 상태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 곧 로고스, 영원한 진리이며 빛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영혼 속에 탄생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에크하르트가 말하는 우리 영혼 안에서의 그리스도 탄생 또는 로고스의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탄생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새로운 탄생 즉 새창조,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의 우리의 영성(즉 하나님의 형상)의 완전한 회복과 우리 영혼의 신적 생명(존재)에의 참여에 대한 역설적 표현으로 이해함이 좋을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이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일치를 이루고 있는가를 에크하르트는 <숭고한 인간>과 <초연에 대하여>라는 저서에서 이 과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단계는 차이(Dissimilarity), 유사(Similarity), 합일(Identity), 돌파(Breakthrough)의 4단계 과정으로 전개됩니다. 처음에는 하느님이 전부이고 피조물은 무(無)이지만,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인간영혼이 하나님 위에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 과정을 추진해나가는 힘이 초탈(Gelassenheit/Abgeschiedenheit)입니다.


첫째의 단계는 차이입니다. 차이의 단계는 하나님과 피조물이 대조적으로 놓여지는 단계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피조물은 순수한 무(無)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작거나 사소한 것이 아니라 철저한 무(無)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래부터 존재를 소유합니다. 피조물은 파생적으로 존재를 획득하게 됩니다. 모든 피조물은 철저히 무(無)입니다. 작거나 하찮은 것이 아니라 순수한 무입니다. 하나님이 본래부터 존재를 소유하는 반면에, 피조물은 존재를 소유하지 않고 다만 파생적으로 존재를 얻을 뿐입니다. 하나님밖에는 오직 무가 있습니다. 존재(사물)는 하나님입니다. 고귀한 인간'은 초탈을 통해서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에크하르트는 세상 사물이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존재 속에는 하느님이 충만해 있음을 말합니다.


둘째 단계는 유사(비슷함)의 단계입니다. 인간의 영혼의 불꽃을 통하여 개별적인 것을 극복하여 보편적인 존재로 나아감으로 그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발견합니다. 이는 동시에 하나님과 비슷하게 되어감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결코 쉬지 못합니다. 영혼은 자신을 발생시키는 근원의 소용돌이 속으로 강력하게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스며드시는 것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로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개별 사물들에서 초탈하여 보편적인 것(존재)으로 나아감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음을 발견합니다. 그때 하느님과 비슷하게 되는 동화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성부의 형상인 성자가 초탈한 인간영혼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우리는 우리 안에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야 합니다.


셋째 단계는 합일의 단계입니다. 에크하르트는 하나님과 인간 영혼 사이의 일치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향과 인가늬 의지를 하나로서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인간 밖에 있지 않고 온전히 내면으로 스며듭니다. 이때 영혼의 불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어떠한 매개도 없이 하나님을 소유합니다. 바로 인간 영혼의 정수와 하나님의 중심이 하나가 됩니다. 만일 영혼의 모든 껍질이 벗겨지고 또한 하나님의 모든 껍집이 벗겨질 수 있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남김없이 직접 영혼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영혼 사이의 합일에 관해서 에크하르트가 한 말들은 자칫하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는 본질의 일치를 염두에 둔 적이 없고, 대신 하나님의 사역과 인간의 생성(becoming)을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인간 바깥에 있지 않고 완전히 내면화됩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은 내 것이다. 예수는 인간 영혼의 성(城) 안으로 들어온다. 그때 영혼의 불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 영혼의 빛은 창조되지 않고 창조될 수도 없으며, 어떠한 중재도 없이 하나님을 소유한다. 인간영혼의 중심과 하나님의 중심이 하나가 된다."


넷재 단계는 돌파의 단계입니다. 영혼이 진정으로 정화된다면, 즉 하나님과의 합일의 단계를 넘어간다면 이제 하나님은 어둠으로 사라지고 신성만 남게 됩니다. 동시에 인간도 어둠으로 사라지고 신성만 남게 됩니다. 시간적인 피조물로서의 나는 죽어서 무로 돌아갑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의 정점은 영혼의 불꽃을 통하여 하나님과 일치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그 일치는 모든 구별은 사라지게 하고,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과 영혼은 온전히 동일하여집니다. 결국 인간과 하나님은 일치를 이루어 그들은 모두 어둠으로 사라지며 이제 암흑의 고요한 신성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에크하르트는 하나님과 합일하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이유를 묻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그 어느 것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심지어 하나님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을 사막, 즉 하나님보다 앞서는 자리로 이끌어갑니다.


에크하르트는 하나님이란 인간이 찾을 때만 하나님으로 존재한다고 보며, 하나님(창조자로서의 하느님)을 초월하는 만물의 기원을 '신성'이라 부릅니다. 하나님과 신성은 하늘과 땅처럼 구별됩니다. 인간 영혼은 더 이상 성자(the Son)가 아니며, 이제는 성부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하나님(인격적인)이 됩니다. 만일 내가 없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탈은 하나님을 돌파함으로써 완성됩니다. 이 사상은 올바로 이해된다면 그리스도교적인 사상입니다. 신앙인이 볼 때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그리스도가 걸었던 십자가의 길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는 결국 신성에의 돌파를 통한 공(空)과 무(無)를 지향합니다. 이는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가 궁극적으로 지향할 수밖에 없는 가장 고양된 수렴점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드리워진 창조주와 피조물은 갈등하고 긴장합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의 특징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갈등과 긴장을 조화롭게 해명하고 극복하는 데에 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신적인 것만이 진정한 것이라고 믿었고, 엑스타시의 체험 속에서 인간의 본질이 신적인 본질과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적 성격을 온전히 드러내는 성서 말씀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마태복음5:3)는 구절f입니다. 에크하르트는 자신을 버리고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을 가장 고귀한 신비주의의 단계로 이해합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다른 영혼들에 민감하다는 것으로 에크하르트는 강조합니다. 에크하르트는 그의 신비주의가 가장 심오하게 담겨져 있다고 여겨지는 마지막 설교인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에서 가난한 사람이 만나는 단계를 세 가지의 여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 가지 청빈을 성실하게 이루면, 인간의 영혼은 무한히 밝아지고 맑아지고 자유로워집니다.


자기를 비우되 가정과 직장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뒤집어 쓰지 않으면 않되었던 가면들을 벗어버리기 위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중세기 영성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청빈을 강조했습니다. 청빈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에크하르트는 가르쳤습니다. 소유의 청빈, 의지의 청빈, 존재의 청빈이 그것이었습니다.


첫째로 소유의 청빈(poverty of possession)입니다. 소유의 청빈이란 글자 그대로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 무엇이 내 생명을 보장하고 풍요롭게 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에크하르트는 사람은 하나님, 그리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것도 원하지 않으면서 의지에 있어서 가난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둘째는 의지의 청빈(poverty of will입니다. 의지의 청빈이란 지나친 자기의지를 발현하여 그 무슨 일을 기어이 해내려는 지나친 일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의지나 지식도 버려야 하는 차원입니다. 특히 종교적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고 자신과 신도들을 지나친 선교 사역이나 큰 교회당 건축으로 몰아가는데 이것은 거룩한 탐심일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는 존재의 청빈(poverty of being)입니다. 존재의 청빈이란 자기의 존재를 자기가 주인이라는 자각 속에서 마지막까지 자기의 존재를 관리하고 주장할 책임과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사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 단계는 신성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제거해 버리게 되는 과정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사람과 신성이 하나임을 발견하는 차원입니다. 결국 에크하르트의 이러한 가난의 기나 긴 여정은 인간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신성에까지 육박해 더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피조성과 유한성과 깨달음과 심지어 하나님도 초극되고 돌파되어 버립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의 정점믄 바로 신성만 고요히 남아 있는 영원한 암흑인 것입니다. 가 산자의 땅에서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선물로 받아드리고, 작은 것에도 감격하고 감사 할줄 아는 것이 존재의 청빈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자기가 거기에서 본래 태어난 아버지의 집 혹은 어머니의 모태에로 다시 환원합니다. 에크하르트는 영혼의 공허성을 피동적으로 당하기 전에 자율적으로, 자기성찰을 통하여 참 자기의 본래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영혼이 온갖 삶의 과정 속에서 둘러 뒤집어 쓰게 된 페르소나를 벗어버리고 순수 자아, 순수 영혼, 순수 자기에로 돌아가는 마음의 결단을 초탈(超脫, Abg-

escheidenheit) 혹은 초연(超然, Gelassenheit)이라고 불렀습니다. 진정한 인간, 참 자기, 씨알로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순수한 인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영성의 제일 첫번째 필요한 조건입니다. 불교계 선사(禪師)들이 말하는 무의도인(無衣道人) 혹은 무위진인(無位眞人)이 그 상태에 들어간 사람들에 대한 다른 표현들입니다.


그러나 현실적 삶 속에서 그러한 영혼의 초탈상태, 정신과 영혼의 초연상태를 자발적으로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땅위의 인간관계에서 부모의 자식사랑만큼 순수하고 숭고한 사랑도 없습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일생동안 자식을 위해서 부모로서 모든 것을 희생 하면서 자식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키고 뒷바라지 한 부모가 말년에, 자식들이 결혼하여 부모 곁을 떠날 뿐 아니라 부모의 은혜를 잘 기억하지도 않을 때, 그 부모들의 공허감과 맘 속의 분노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요즘 조기 은퇴 붐을 맞아, 50-60대 이후 노인들의 경우 특히 지난날 재벌 기업체 간부, 금융업계 장들, 고급 공무원, 영관급 및 장성 출신, 인기 직종의 배우들, 정치계 국회의원들과 종교계 거물급들은 심각한 자기 공허감과 박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갑자기 벗겨진 페르소나 곧 자기가 둘러쓰고 있던 마스크가 벗겨지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의 위치는 무엇인가? 등등 자기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이 들어가면서 서서히 밖을 향해 줄달음질 하던 삶의 자세를 안으로 영글어가도록 자기성찰의 자세로 바꿔가야 합니다. 대체로 나이 40대가 넘어서면 이러한 삶의 전환이 와야 합니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은 40대가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했습니다. 40대가되면 명예욕이나 물질욕이나 이성에 끌리는 그런 일이 아예 없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전히 사회인으로서, 노년의 경제생활까지를 염려하면서 더 정신없이 밖의 세상을 향한 활동을 강화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식물의 성장과 열매 맺는 과정을 진지하게 관찰해보면, 한 여름 태양의 열기 속에서 과일 크기를 늘리고 당도를 높이기 위해 성장을 극대화 하던 과수나무는 처서가 지나고 입추가 되면 성장을 멈추고 안으로 영글어 가는데 온힘을 기울입니다. 필요하면 나무의 잎을 스스로 떨쿠어 버리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40-50대가 지난 이후에도, 자기의 내면적 성찰 곧 영혼의 영글음에 관심을 갖지 않고 밖으로만 치닫는 사회 활동적 인간은 정신적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저명한 정신과 의사 칼 융(Carl Jung)박사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영성 신학에서는 한국의 일부 기독교신비주의 운동에서 보이는 반지성주이나 지나친 열광주의적 몰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에 접하고, 인간의 영혼이 청빈해져서 본래의 고향집에 이르면, 영혼은 거기에서 본래의 순수한 ‘일자’(一者), ‘신성’(神性), 존재자체, 하나님, 혹은 순수정신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새롭게 생명의 충일과 자유와 거룩을 체험하게 됩니다. 에크하르트의 하나님은 전통적 기독교의 유신론적 초월신관에서 말하는 하늘에 계신 절대 군주같은 분이 아닙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대로 참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이 그 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사도행전 17: 28) 그런 존재 지반으로서의 실재이며, 만물이 그로부터 나오고, 그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그에게로 돌아가는(롬11:36,엡4:6) 궁극적 실재입니다.


에크하르트가 체험한 하나님은 인간의 머리로서 생각하고 교리와 신학 체계 속에 가둬놓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신을 넘어서 있는 신’(God beyond gods)을 말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인간의 종교란 해당 문화의 언어와 역사 속에서 체험하고 묘사한 일자(一者)에 대한 부분적 묘사인즉, 붓대롱으로 본 하늘이라는 사실을 알라고 경고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인간들의 이념과 특정 가치와 특정 세계관을 절대화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름들을 초월해 있는 참 하나님은 이름할 수 없는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모든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를 빛과 생명과 진리로서 떠받히고 이끌어주고 있는 신비자(The Mystery)입니다. 종교와 신의 권능을 빌려서 인간이 획득 하고자 하는 것들과 성취 하고자 하는 것들을 얻으려는 시도는 모두 타락한 시대의 거짓 종교 모습입니다.


종교의 타락시대 속에서 초탈, 초연, 청빈, 영혼의 돌파와 환원을 강조한 에크하르트의 영성은 새롭게 음미되고 주목할만 합니다. 하나님은 저 밖에 있는 절대 타자라기보다는 우리들의 영혼의 밑바탕에서 혹은 영혼 안에서 선함, 아름다움,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라고 부르는 미세한 소리입니다. 오늘의 기독교는 인간에게 참다운 쉼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가 아니면 거룩의 이름으로 도리어 인간의 마음을 피곤하게 만들고 순수한 인간이 아닌 종교적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성찰해야 합니다.


에크하르트가 우리에게 충고하는 진정한 영적 지도의 조언은 하나님과 영적 거래를 하려고 시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장래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여 보험에 드는 것은 좋지만, 장래 혹시 있을런지도 모르는 현세축복을 위해서 신의 환심을 사고, 달래며, 경외하는 척 아첨을 떨며, 신을 더 열심히 지성껏 받들어 모시겠다는 무의식적 신과의 거래를 당장 중지하라는 것입니다. 욕심과 하찮은 허영심으로 어두어진 눈을 비비고 바르게 보면, 인간이란 대우주 자연 속에서 한갖 들의 풀이요 잠간 언덕위에 피어있는 할미꽃들입니다. 모두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작은 피조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들의 영광을 영원히 남기려는 피라밑과 청동거울과 묘비와 기념건축물도 몇 만년이 지나면 모래바람 속에 다 씻겨 없어져 버립니다. 참자기를 찾아 자유인으로서 삶속에 있는 진선미를 사랑하면서 겸허하게 사는 것 그것이 최선의 지혜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나고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매번 우리 순수해진 영혼 안에서 다시 태어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에크하르트 영성 신학이 가르치려 했던 참된 경건이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중세 카톨릭 신학의 대표적 인물인 토마스 아퀴나스와 동시대 사람이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스콜라철학의 신비가였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특히 개신교는 이성과 신앙, 지성과 영성, 신의 초월성과 내재성, 신성과 인간성을 너무 날카롭게 구별한 나머지 그 둘 사이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처럼 분리시켜 버렸습니다.


한국 개신교를 둘러보더라도, 가슴과 머리가 모두 뜨거워져서 자기 성찰적 신앙과 조용하게 사유하는 지성적 믿음을 포기해버린 열광주의적 기독교, 무당굿판 같은 기독교, 심지어 일부에서는 광신적 기독교라는 인상을 한국사회에 던져주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의 복음정신을 이어 받았다 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라는 그럴듯한 명분에 스스로 도취하여 공로 신앙과 영적 탐심에 깊이 물들어있습니다. 기독교를 둘러싼 이 세상 풍조가 자본주의적 사회이기 때문에, 성공 신화와 무한 경쟁과 교회 성장이라는 비복음적 신화가 기독교를 깊이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계의 위기 시대에 에크하르트의 영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에크하르트는 그리스도인들이 성서의 외적 언어를 통해 그 내부 세계를 꿰뚫어 영혼의 깊숙한 곳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청빈의 영성은 현대판 우상들을 비판적으로 분별하게 하는 지성의 눈을 열어줍니다. 우상숭배자들은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는 지적을 절대로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자기들은 진리를 지키고 선양하는 십자군적 정예 병사들이라고 자신들을 맹신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영성 신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심각한 조언은 당신들은 현대판 우상들에게 조종 당하면서 살지 않았는가를 조용히 성찰하라는 것입니다.


셈족계 종교가 동일하게 강조하는 바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우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 옛날엔 금이나 동이나 쇠나 나무로 사람의 모습이나 반신반인간(半神半人間)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하며 춤추고 날뛰는 모습으로 상징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판 우상은 그렇게 단순하거나 유치하지 않습니다. 가장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강렬한 매력과 이념적 흡인력을 가지고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이념, 민족주의 이념, 자유민주의 이념, 과학주의 이념, 번영과 풍요의 이념, 군사력 절대주의 이념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히틀러의 제3제국, 소련연방시절 스탈린주의, 일본 극우파들의 천황제 군국주의 이념, 미국의 세계제국주의적 패권주의 이념, 무한생산 무한소비의 경제절대주의 이념, 오류가 없는 문자적 경전절대주의 이념 등등은 모두 현대판 우상입니다. 그러한 이념들은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비판적 지성을 무디게 하며, 적대감을 부추기며, 반생명적이고 반평화적 행동을 부추기게 됩니다. 부추길 땐 언제나 안보, 민족자존, 정의파수, 진리파수 등등 그럴듯한 명분으로 추종자를 바보로 만들면서 열광주의로 빠지게 합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청빈의 영성은 위와 같은 현대판 우상들을 비판적으로 분별하게 하는 지성의 눈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자들은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는 지적을 절대로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자기들은 진리를 지키고 선양하는 십자군적 정예병사들 이라고 자신들을 맹신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해방을 기념하면서,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과거를 조명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크하르트 영성 신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심각한 조언은 남·북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당신들은 현대판 우상들에게 조종당하면서 지난 세월들을 살지 않았는가 조용히 성찰하시오”라는 것입니다. 지난 우리들의 역사 속에는 참된 자유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사회 실현을 요청했던 이땅의 청년들과 지성인들을 고문하고 살상했던 반공 지상주의적 극우파 사람들, 군부독재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렸던 기회주의적 수구적 언론인들과 지식 도매업자들, 노동자와 농민들과 도시 빈민들이 삶에 힘겨워할 때 불노소득의 재물로 흥청망청 놀아나던 현대판 천민귀족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성찰할 때, 우리는 배금사상의 물신주의와 권력지상주의와 특정 정치이념의 노예가 되어 왔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우리들은 행복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 기독교는 자기 성찰에 있어서 한국 어느 다른 종교들보다도, 한국 어느 다른 사회 단체보다도 훨씬 철저한 자기 비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의 기독교가 과연 갈릴리 순수 복음의 모습인가를 반성하여야 합니다. 지금의 기독교를 예수는 인정하실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특히 에크하르트의 초탈, 초연, 청빈, 의지의 가난을 예수는 요청 할 것입니다. 겉으로 교세가 불어나고 교회의 재산과 권력 구조가 비대해질수록 종교의 순수성은 병이 들고 부패와 도덕적 영적 무감각증상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 시대의 인간이 정작 염려해야할 것은 더 많이 소유하지 못함이 아니라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음을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


13세기 말엽과 14세기 초엽에 독일을 중심으로 꽃피웠던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영성 신학은 서구 신학계에 끼친 거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 난해성 때문에 이란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사상은 신학계 뿐만 아니라 철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믿어집니다. 특히 그의 사상은 서구 신학계뿐만 아니라 철학계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믿어집니다. 에크하르트의 신학 사상은 그의 제자들인 헨리 수소와 요한 타울러 등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여집니다. 마틴 루터는 요한 타울러를 통하여 에크하르트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마틴 루터는 전생애를 통하여 변함없이 에크하르트를 존경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야곱 뵈메에게까지도 에크하르트에게 많은 사상적 빚을 지고 있으며, 영국의 신비 사상가인 <무지의 구름>의 저자와 쥴리안 놀위치, 그리고 스페인의 영성가인 아빌라의 데레사, 십자가의 요한,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및 퀘이커계 사상가인 죤 후스와 죠지 폭스 등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칸트와 쇼펜하우어와 스피노자와 헤겔과 하이덱가 및 야스퍼스 등의 사상자들에게도 많은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근대 이후에 와서 특히 쉘릴과 헤겔의 철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대 신학자로는 로돌프 오토와 폴 틸리히가 에크하르트의 사상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마도 신·구교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실재나 또는 존재의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진 사상가 그리고 기독교 신비주의자나 영성가들은 6세기에의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지트의 신비 신학과 함께 에크하르트의 사상에서 영향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에크하르트의 영향은 광범위하고 지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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