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Jo BBS


작성자
정재상
날짜
10/04/13 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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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
제 목
 기도란 무엇인가? - 이강학
 
 

기도란 무엇인가?: 기독교 영성의 관점에서



* <프리칭>에 기도한 원고입니다.



현대 한국 기독교인은 어느 때 보다도 더욱 깊이 있는 기도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 있다. 기독교 영성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모든 변화의 경험”이라고 정의할 때, 기도에 대한 갈망은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더욱 가까이 만나고자 하는 갈망이고,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초월하여 인격적으로나 삶으로나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닮아가는 변화를 경험하고자 하는 갈망이다. 기도에 대한 갈망에 추동된 인간의 영혼은 지금까지 해 온 기도생활이 이러한 영성적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할 때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하게 되어 있다. 현대 한국 기독교인의 영성에 대한 증폭된 관심은 이런 갈망과 추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생활이 영성적 요구에 바르게 응답하려면 기도와 관련된 네 가지 요소 - 즉 기도의 대상, 기도의 목적, 기도의 방법, 그리고 기도의 식별 - 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1. 기도의 대상

올바른 기도생활은 기도의 대상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비롯된다. 기독교인의 기도의 대상은 누구인가? 하나님이다. 그런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하도록 안내해주었다. 또한, “아버지”께서 보혜사이신 “진리의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는 “주기도문”을 통해 제자들에게 기도의 대상을 성부 하나님이라고 가르쳤다. 예수의 제자들은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교회의 전통은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문과 함께 성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거나, “성령이여 오소서”라는 기도문을 통해 성령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해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의 대상이 삼위 중 누구인가 하고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 안에 삼위가 일체로서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며 시작하는 기도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기억하는 것과 기도할 동기를 부여해주는 성령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필수요소가 된다.

기도의 대상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삼위일체의 관계적 속성이다. 삼위일체의 내적 관계는 사랑의 교제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창조와 구원은 삼위의 서로를 향한 사랑이 흘러넘친 결과로 일어난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와 구원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누는 사랑의 교제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신다. 기도는 그 인격적 초대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기도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누는 사랑의 교제로의 초대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을 오해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첫째, 정의의 하나님을 오해하여,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이 무서운 심판관으로만 여겨질 수 있다. 이 경우에 하나님은 기도자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는 특히 엄한 아버지 이미지가 하나님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강화시킬 수도 있다. 경외감이 아닌 두려움은 사랑의 교제를 가로막는다. 이런 점에 있어서 하나님이 늘 두렵게만 여겨지는 사람은 진정한 기도를 하기 힘들다.

둘째,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을 오해하여, 하나님이 나의 육체적인, 정신적인, 또는 영적인 필요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분으로 여겨질 수 있다. 육체적 질병이나 마음의 상처로부터의 치유를 위해 또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그 기도가 치유를 넘어서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로 나아가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은 아닐지라도 기복신앙에 편승하여 세상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하나님을 그때그때 이용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나님이 그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을 역이용하여 하나님을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워줄 대상으로 삼고 기도하는 것은, 사랑의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큰 오해에서 비롯된 기도이다.



2. 기도의 목적

기도의 대상을 올바로 이해하면 기도의 목적이 더욱 분명해진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고, 그 하나님이 삼위일체적 사랑의 교제에 참여하라고 우리를 초청하신다면,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기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준비하여 드리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교제에 온전히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현장이 될 때 가장 그 본질에 가깝다.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하는 방향에 다음과 같이 영향을 끼친다. 첫째, 하나님의 자녀가 품게 되는 모든 기도제목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초청장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시작하는 동기는 삶의 고난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 간증 또는 라이프스토리가 이 사실을 잘 다루고 있다. 기도자 또는 기도자가 사랑하는 사람이 중병에 걸리거나, 사업이 어려움을 겪거나, 관계가 불화할 때, 또는 진로와 미래가 불안할 때 기도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기도자가 당장 눈앞에 벌어진 고난을 해결하는데 집중하느라 기도의 본질을 생각할 여력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 고난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초청장의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또 이 모든 일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기도자가 그 마음에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맛보게 될 것이다.

둘째,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 또는 무응답이 기도의 종료가 되어서는 안된다. 많은 경우에 기도의 응답과 무응답은 기도의 종료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기도가 응답된 후로 다른 절박한 기도제목이 생기기까지 기도를 게을리하는 경우가 생긴다.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아예 기도를 포기하는 경우들도 생긴다. 두 경우 모두 기도의 목적을 오해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기도자가 원하는 것을 얻었든 못얻었든 중요한 것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어가야한다는 것이다.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든 하나님과의 교제는 계속 지속될 뿐만 아니라 성숙해가야 한다. 여기에서부터 진정한 의미의 영성생활이 시작된다. 기도를 통해 내가 원하던 것을 성취했는가의 여부에 집착하는 유아기적 수준의 기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을 익힘으로써 성숙한 기도로 나아가야하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성숙해가는 과정을 다양한 단계로 설명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위디오니시오스의 세 단계 - 즉, 정화 (purification) 의 단계, 조명 (illumination) 의 단계, 그리고 일치 (union with God / unification)의 단계 - 이다. 이 세 단계의 구분은 의지적으로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도를 통해 지속하는 사람이 받는 세 가지 종류의 은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의 은혜인 정화의 과정은 기도자의 내적 세 가지 기능인 기억, 이해, 그리고 의지가 이기적으로 세상적으로 타락하고 물들어있던 때를 벗고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과정이다. 두 번째 단계의 은혜인 조명의 과정은 하나님의 형상인 “참 자아”를 발견해가는 과정이고, 하나님에 대한 앎과 깨달음이 더욱 늘어나는 과정이다. 칼빈의 표현을 따르면 경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나를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의 은혜인 일치의 과정은 기도자의 전 존재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교제에 온전히 참여하는 과정이다. 일치의 은혜는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요한복음과 아가서에 표현되고 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요 14:11);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아 6:3).

셋째, 마지막으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는 끝이 없다. 위에서 소개한 정화, 조명, 그리고 일치라는 세 단계의 은혜 가운데 마지막 단계인 일치의 은혜는 이 세상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교제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을 일치라고 할 때, 그것은 이 세상에서 순간적으로 잠시 경험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많은 영성가들이 전한다. 인간관계를 잠시 비유하자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는 친밀함이 어느 정도까지 가야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결혼 예식을 통해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남편과 아내의 친밀함이 어느 정도까지 가야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 그리고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도 친밀함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없이는 이내 어색해지고 냉담해지는 것이 관계의 특성인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친밀함을 키워가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이 기도와 관련된 영성훈련의 필요성을 잘 일깨워준다.



3. 기도의 방법

기도의 대상을 제대로 알고, 기도의 목적이 분명해졌다면, 다음으로 자신에게 맞는 기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 개신교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기도 방법은 통성기도와 방언기도이다. 먼저, 통성기도는 공동체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기도제목을 정하고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부르짖는 기도이다. 각종 예배나 부흥회, 크고 작은 기도 집회에서는 통성기도를 하도록 안내된다. 통성기도는 한국 개신교회 영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 예인데, 왜 한국 개신교인들은 기도의 방법으로 통성기도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몇 가지 가능한 원인을 들면, 1907년 평양 대부흥의 영향과 한국인의 한풀이 문화이다. 즉, 부흥이 일어났을 때 한 목소리로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던 현상이 이후의 통성기도 방식으로 고착화되었을 수 있다. 아울러, 한국인이 사회역사적으로 겪은 고난의 결과 가슴에 맺힌 한이 부르짖음으로 하나님 앞에 표현되던 것이 통성기도로 굳어졌을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의 변화된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 개신교인들은 통성기도 외에 다른 기도 방법들을 알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과거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야만 하는 상황이 늘 지속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르짖을 때가 잊지만 반대로 잠잠히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어야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통성기도에만 익숙해져있던 사람들이 침묵 기도를 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침묵기도를 직접 경험하고 안내해주는 목회자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다음으로, 한국 개신교인들이 관심을 가져온 기도는 방언기도이다. 한국 개신교회에 교단과 상관없이 방언기도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오순절 교단, 즉 순복음 교회, 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14장에서 방언의 오용에 대해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 방언을 통역하는 것, 예언하는 것을 성령세례와 신앙성숙의 표지로 보기 시작하면서, 방언 받는 것이 중요한 기도제목이 되고, 방언 받는 법을 지도하는 상태까지 오게 되었다. 기도의 초자연적 경험에 대한 편협되고 과도한 관심이 오히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배경에서 통성기도와 방언기도에 만족하지 않거나 회의를 느끼는 개신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다양한 기도방법에 대한 한국 개신교인들의 관심은 교파와 교단을 넘어 카톨릭으로 심지어는 다른 종교로 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한국 개신교인들이 기독교 영성사에 나오는 다양한 기도 방법들에 관심을 갖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기도는 소리를 기준으로 음성기도와 침묵기도로 나눌 수 있다. 음성기도에는 통성기도, 방언기도 외에 기도문기도가 있다. 기도문기도는 시편 또는 성경의 다른 기도문들, 교회에서 정한 기도문들, 그리고 성프란치스코와 같은 영성가들의 기도문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기독교 영성 전통 안에 있는 기도 방법들은 침묵기도가 주를 이루었다. 침묵기도는 크게 묵상기도 (meditation) 와 관상기도 (contemplative prayer) 로 나눌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묵상기도는 우리의 정신적 기능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기도이고, 관상기도는 고요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쉬며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이끄심에 맡기는 수동적 기도이다. 관상기도에 대해서는 영성가들마다 정의가 다르므로 어떤 영성적 배경에서 사용하는 관상인가를 알고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독교 영성 전통의 다양한 침묵 기도 방법들은 크게 신비주의 전통을 구분하는 두 가지 갈래 - 즉, 긍정의 길 (the kataphatic way) 과 부정의 길 (the apophatic way) - 안에서 다시 설명할 수 있다. 긍정의 길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내적 기능들 - 즉, 상상력, 기억, 직관, 감각, 개념 등 -과 성경 및 자연, 세상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 전통이다. 반면에 부정의 길이란 그런 것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모든 인간이 만든 개념들을 부정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 전통이다. 모든 기도 방법들은 긍정의 길과 부정의 길 사이에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 그 스펙트럼을 긍정의 길부터 시작해서 부정의 길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상상력을 이용한 기도, (2) 렉시오 디비나, (3) 예수 기도, (4) 자연 묵상, (5) 그림 묵상, 그리고 (6) 향심 기도. 이 중 상상력을 이용한 기도와 렉시오 디비나는 성경을 사용하는 기도 방법이다.

(1) 먼저 상상력을 이용한 기도는 우리의 다섯가지 감각들 -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 을 사용해서 성경 본문 속으로 들어가 그 현장을 경험하며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도해보는 기도이다. 상상력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서 성경본문의 상황을 이해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준비하는 기도이다. 유해룡의 <기도 체험과 영적 지도>가 좋은 안내서이다. (2) 렉시오 디비나는 성경 본문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반복해서 읽다가 (lectio, reading)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고, 묵상하고 (meditatio, meditation), 기도하고 (oratio, prayer), 관상 (contemplatio, contemplation) 하는 데까지 이르는 기도이다. 성경본문에서 가장 강하게 마음에 부딪혀오는 낱말, 또는 구, 절을 붙잡고 마음으로 순종하는 데까지 나가는 것이 이 기도의 핵심이다. 허성준의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가 좋은 안내서이다. (3) 예수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문을 호흡에 실어 쉬지 않고 반복하며 묵상하는 기도이다. 예수 이름의 능력이 기도자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시키는 기도이다. 익명의 수도자의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가 좋은 안내서이다. (4) 자연 묵상은 자연을 바라보며 성령의 이끄심을 경험하는 기도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찬가”는 자연 묵상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5) 그림 묵상은 아이콘이나 성화를 바라보며 성령의 이끄심을 경험하는 기도이다. 헨리 나우웬의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와 <탕자의 비유>는 그림 묵상에 대한 좋은 안내서이다. (6) 향심 기도는 대표적인 부정의 길에 있는 기도 방법으로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들에 사로잡히지 않고, 마음의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나는 것을 지향하는 기도이다. 생각과 느낌들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거룩한 단어”를 잠깐씩 사용할 뿐이다. 이세영, 이창영의 <향심기도 수련>이 좋은 안내서이다.

최근에는 자신에게 맞는 기도 방법들을 찾는 것과 관련해서 성격심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성격유형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이론들도 많이 나와 있다: MBTI (Myer-Briggs Type Indicator) 또는 애니어그램 등. 단순하게 말하면, 외향적인 사람은 음성기도와 같이 외적으로 표현하는 기도나 자연묵상 또는 노동기도처럼 외부에서 활동하면서 하는 기도를 더 선호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골방에서 하는 침묵기도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도의 방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이끄심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기도와 식별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4. 기도의 식별

기도의 대상을 잘 이해하면 기도의 목적이 더 분명해지고 기도의 방법을 찾는 것도 훨씬 수월해진다. 기도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기도의 경험을 잘 식별하는 것이다. 이를 기독교영성에서는 “영성식별” (spiritual discernment) 이라고 한다. 먼저, 영성식별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다룰 때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기도의 경험이라고 할 때 그 경험은 반드시 초자연적이고, 초감각적이며, 신비적이고 기적적인 체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령의 역사를 치유, 방언, 예언, 환청, 환상 등과 같은 초감각적인 경험에 한정시키는 것은 기도의 목적인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의 영역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가져오는 평화, 기쁨, 위로, 소망, 믿음, 그리고 사랑의 경험도 아주 중요한 경험이다. 기도 안에서 생각이 정돈되고 인격이 통합되는 경험도 아주 소중한 경험이다. 특히, 기도 안에서 인격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고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들 - 즉,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 (갈 5:22-23) - 을 맺어가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필수적인 경험이다. 뿐만 아니라 비록 기도 안에서는 기억에 남는 경험이 없었다고 해도, 일상 생활 중에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다가서는 변화를 감지한다면 그것 역시 기도자가 눈여겨보아야할 기도의 경험이 된다. 이런 점에 있어서 한국 개신교인의 기도 경험에 대한 관심의 초점이 초자연적이고 초감각적인 경험에서 일상적이고 인격적인 경험으로 옮겨져야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 영성 전통에서 일상적이고 인격적인 경험의 식별을 도와주는 권위있는 대표적인 식별법을 찾자면,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 (Spiritual Exercises)>에 나오는 식별법과 함께 조나단 에드워즈의 <종교적 정감 (Religious Affections)>에 나오는 식별법을 들 수 있다. 두 식별법의 두드러진 공통점은 기도의 경험에서 정서(affection)가 하는 역할에 주목한다는 사실이다. 성령의 바람이 인간의 영에 불어올 때, 인간의 영의 반응을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정서와 감정(emotion)이다. 내면의 성찰을 지속할 때 기도자는 자신이 하나님을 향해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식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감지된 정서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영성지도” (spiritual direction) 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기독교 영성지도란 한 기독교인이 다른 기독교인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식적인 일대일 또는 그룹 관계를 일컫는다. 영성지도는 영성생활을 시작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더욱 친밀하게 하고 싶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여러 가지 장애물과 오해들을 제거해줄 수 있는 영성생활의 필수적인 안전장치이다. 영성지도자 (spiritual director)는 피지도자 (directee)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도록 돕는다. 또한 기도의 목적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있음을 잊지 않도록 돕는다. 그리고, 피지도자가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기도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마지막으로, 영성지도는 피지도자가 자신의 기도 경험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의 흔적을 잘 식별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런 점에 있어서 한국 개신교인의 기도에 대한 갈망에 호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 (means of grace) 으로서, 영성지도가 개신교회 내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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